네팔

ABC 트레킹 넷째 날 / 도반에서 히말라야, 데우랄리 거쳐 MBC까지

배흘림 2018. 4. 19. 19:56



함박눈을 즐기며 걷고 밤에는 별을 헤고

(2018. 3. 6)


4일차 아침도 어김없이 마차푸차레와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탁재형 PD 사진)

둘이서 같은 시각, 같은 화각으로 찍었는데 난 표준 줌 50mm렌즈로 찍었더니

아무리 크롭을 해도 사진의 맛이 살지 않아 탁PD의 사진을 차용했다.







아침으로 먹은 구릉브레드


계란은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하며 거의 모든 롯지들이 계란을

주문하면 꼭 두 개씩을 요리해 주는 특징이 있었다.






얘와 누렁이, 두마리 개가 아침에 기념촬영을 할 때부터

우리들 주위를 맴돌더니 길을 나서자마자 계속 따라왔다.


은근히 걱정이 돼 돌려 보내려 애를 썼지만

 계속 따라 왔고 그러다 언젠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우리 모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아마 함박눈이 쏟아질 때였을 것으로 추정 !!


우리 인간들이야 비가오나 눈이오나 죽자사자 길을 가지만

얘네들은 굳이 눈을 맞으며 갈 필요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ㅎㅎ


그런데 다음날 이른 아침에 MBC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이 녀석이 유유히 들어 오는게 아닌가?

또 다시 한덩어리의 밥을 취하고는 사라졌다.







숲에는 원숭이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저 앞만 보고 가느라 발견하지 못했는데

앞서가던 독일인 부부가 발견하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난 원숭이를 본 게 신기한 게 아니라 육안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숲 깊숙한 곳의 생명체를 확인한 독일인 부부의 관찰력이 놀라웠다.


내려올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프랑스 여성이 숲에

원숭이 무리가 있다고 알려 줘서야 멈춰서 원숭이들을 봤다.


하산시에는 원숭이들이 등산로 바로 옆 나무 위에서

놀고 있었는데도 우린 그냥 지나칠 뻔했다.


아니 실제로 그런 장면들을 얼마나 놓쳤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에서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여행지나 삶에서 우린 지나치게 목적지만 바라보고

그리고 도달하려 아둥바둥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우린 앞만 보고 걸어 히말라야(2920m)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09:30)

표지판에는 호텔 & 레스토랑이라고 버젓이 표기돼 있다. ㅎㅎ


4일차에는 도반(2600m)을 출발해 히말라야(2920m), 데우랄리(3230m)를 거쳐

MBC라 불리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까지 오르는 일정이었다.





히꾸 동굴에서 본 데우랄리와 주변 풍광


여기서 데우랄리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겠다하니

가이드가 40분은 걸릴 거라고 했다.


막상 걸으니 눈으로 본 것보다 훨씬 멀었고

길도 울퉁불퉁해서 거의 40분이 소요됐다.

역시 경험이 많은 가이드의 눈은 정확했다.






가이드한테 이 산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이름없는 무명산이란다.

히말라야에서는 이 정도의 산세로는 이름도 가지질 못하는 모양이다.

한반도에 와서 자리잡았으면 엄청난 대우를 받을텐데 말이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누구나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거늘

혹시 이 산이 8000m 급이 아니면 산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더러운 히말라야산맥이라고 하소연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즉석에서 친애하는 가이드의 이름을 따서

우덥 Mt.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ㅎㅎ





힌꾸 동굴(Hinku cave)


작은 동굴로 이름은 구릉족 언어라는데

막상 구릉족에게 뜻을 물었더니 그런 단어는 없다고......





만년설이 녹으면서 폭포를 만들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선 데우랄리(Deurali)



 

나의 뒤태 (탁재형 PD 사진)




점심을 먹을 데우랄리(Deurali) 도착 (11:30)





흔한 네팔 풍경






가이드가 자기가 절벽에 불상을 만들어 놨으니 찾아 보라며 익살을 떤다.

한참을 헤매고서야 찾아냈는데 표준렌즈로는 식별불가 !!






망원으로 담은 사진으로 보니 신기하게도

진짜 불상처럼 보인다.(탁재형 PD 사진)




또 먹은 달밧


돌아와 사진을 보니 왜 그리도 달밧을 고집했고

자주 먹었는지 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른 이들은 거의 달밧을 먹지 않았는데 나만 꼭 밥,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던 걸까?






데울랄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오후 1시 정각에 출발했다.

도반부터는 계곡 옆으로 길이 나 있고 특히 데우랄리에서

MBC로 가는 길 초입은 계곡에 바짝 붙어 걷는다.


가이드가 예전에 비가 많이 내려 길이 잠기고 없어져서

계곡 건너 산쪽으로 산행을 한 적도 있었다고 알려줬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이 아닐까?





여기 추모비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5년 전쯤 트레킹을 온 우리나라 여성이 이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그만 실족하여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리를 헛디딜 만한 곳이 없는데 사람이 궁지에 몰리거나

잘못되려면 이상하리만치 엉키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그런 경우였나보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사고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얼마나 황망했을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잠시 명복을 빌고 다시 길을 갔다.






길은 협곡의 아래를 훓듯이 지난다.(탁재형 PD 사진)

고도를 높이니 식생이 달라져 나무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데우랄리에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아래에서 위쪽 방향으로 심상치 않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데우랄리 출발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함박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탁재형 PD 사진)










위에서 만년설이 쏟아져 있는 상태로 작은 눈사태가 난 듯했다.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래는 절벽이니 조심조심 !!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표지판 위에도 눈이 눈이~~ 






함박눈이 내려 오랫만에 하얀 세상을 만끽했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출을 보기 위해 ABC에 가기로 했으나

밤늦게까지 내린 눈에 덮힌 길을 초행자들이 뚫고 가기에는

무리여서 안전을 우선으로 삼아 일출산행은 취소를 했다.








길이 외길이라고 해서 가이드보다 앞서 갔더니

웬걸 두 갈래길을 만나 대략 난감 !! 이었다.


길로 보나 정황상으로는 정면에 보이는 곳이

게스트하우스일텐데 표지판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미심쩍어 왼쪽길을 택해 5분 여를 갔지만 게스트하우스는

보이지 않아 결국 오던 길을 내려갔다가 일행을 만나 다시 올랐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15:30)해서 배낭을 내려 놓은 다음

일행 중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이가 있는 듯해서 다시 내려갔는데

다행스레 조금 지쳤을 뿐 배낭도 스스로 메고 오를 정도로 괜찮았다.






사진을 보며 글을 쓰는 이 순간 왜 또 달밧을 주문했을까?

무슨 달밧귀신이 씌었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된다. ㅎㅎ

맛이 심심한 저 과자는 왜 꼭 챙겨 주는지?


이날 MBC 식당에 1,500루피(한화 15,000원)를 주고 난로를 켰다.

산에까지 와서 굳이 난방을 할 필요는 없을 듯했고

롯지에서 받는 비용도 너무 비싼 듯했다. 







《안나푸르나의 별헤는 밤》


이번 산행을 주선한 탁재형 PD께서 밤새 내린 눈과

안나푸르나 하늘의 별을 장노출로 담았다.

(별사진은 모두 탁재형 PD 사진)






나 역시 새벽에 나와서 별을 감상했으나 삼각대도 없으니

눈으로만 즐기고  카메라에 담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탁재형 PD는 많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쌓아 온 명성 그대로의

직업정신을 발휘하셔서 아름다운 사진을 담아 보내 주셨다.





정말 정말 아쉬웠던 점은 달이 보름에 가까운 시기라

별을 감상하기에 상대적으로 달이 너무 밝아 적합하지 않았다.


볼리비아 우유니에 갔을 때도 보름달 시기라 별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난 맑은 날과는 인연이 많지만 별과는 별로 친하지 않나 보다.

국내에서도 천문대를 가면 달이 밝거나 구름이 많이 끼거나 했던 기억만 있다.





사진의 메타정보를 보니 보통 25초 장노출로 담으셨던데

삼각대 세팅하고서 수십장을 찍었을테니 오랜 시간동안

추운데서 고생 많이 하셨고 덕분에 좋은 사진을 감상한다.


그런데 달이 너무 밝아서였을까?

타임을 조금 더 줬다라면 하는 아쉬움에

촬영자에게 묻지도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로

좀 더 많은 별이 보이고 주변도 밝게 보정을 했다.






위풍당당한 안나푸르나 남봉 위에 별들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