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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세월 동안 대가람에서 폐사지로 변한 고달사지

배흘림 2016. 7. 19. 22:59


절집은 사라졌지만 선이 굵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고달사지

(2016. 7. 3)


거의 20년전 고달사지에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고달사지는 사진처럼 이런 모습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폐사지, 폐허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폐허 속에 진주처럼 원종대사탑비와 원종대사탑, 석조대좌, 승탑 등의

화려하고 선이 굵은 조각은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충격이었다.

아마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폐사지들을 즐겨 찾게 된 듯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장마철 곧 장대비가 쏟아질 듯한 날에 다시금 폐사지를 찾았다.

역시 폐사지는 가랑비가 내리거나 을씨년스러운 날에 가야 그 맛이 더하는 법......   






입구에는 400년이나 됐다는 느티나무가 답사객을 반기고 쉼터도 제공해 준다.





그 당시에는 마치 사구나 준설토를 쌓아 둔 듯 보였던 폐사지가

어느 정도 발굴 작업을 마쳤는지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석조

탐방로로 들어서자 먼저 손상된 석조가 보였다.

당시 쓰임새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데 과연 무슨 용도였을까? 




석조


깨진 석조의 부근에는 거의 온전한 모습의 또 다른 석조가 있는데

큰 화강암을 파내 마치 욕조처럼 만든 조각품으로 석공의 집념이 낳은 작품이다.


석조 아래에는 물이 빠지도록 구멍을 뚫어 놨으니 분명 취사 등 물을 담아 사용했을 것이다.  

크기가 321cm×149cm×98cm(높이)나 되니 절의 규모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석조대좌 (보물 제 8호)


불상은 없고 대좌만 남았는데 조각솜씨가 명쾌하다.

불상이 남아 있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장중하고 화려했을까?

전체를 볼 수 없슴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원종대사탑비 (보물 제 6호)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광종대까지 활동하고 국사의 예우를 받은 승려인 원종대사의 비이다.

비신은 무너져 여덟 조각으로 깨졌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비문 에는 원종대사의 탄생과 출가, 당나라 유학과정, 귀국 후 국사로 책봉되어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으며

당시 고달사를 중심으로 한 고려초 불교계 동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실 고달사지에 가는 이유는 거북몸에 용의 머리를 한 귀부와 발톱을 보기 위함인데

부리부리한 눈과 불을 내뿜을 듯한 용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은 볼수록 감탄스럽다.

 



예전에 갔을때는 귀부에 비신없이 바로 이수를 올려 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용의 발톱인가? 볼수록 매력적인 발톱 조각이다.




원종대사탑비를 옆에서 본 모습

 

천 년 이상의 지난한 역사를 켜켜이 이고 있는 귀부와 이수 사이에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신참 이수의 앙상블을 기대하기란 애초 어려울 터,

또다시 천 년이 흐른 후에는 한 몸뚱아리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원종대사탑비 이수





또 하나의 탑의 귀부로 머리와 비신을 얹는 돌이 깨져 있다.

그리고 현재 놓여 있는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건지?





꼬리 부분으로 덩치에 비해 소박하게 말려 붙은 것이

불교미술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다.




원종대사탑 (보물 제7호)

원종대사(869~958)의 부도로 97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계단길로 조금 오르면 만나는 부도로 화려하고 섬세함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고려 석실묘

다시 500m 가량 올라가면 만나는 고려말기로 추정되는 석실묘





땅강아지


분수를 모르고 날 뛰는 이를 땅강아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이라 본 그 즉시 밟아 버리려  했지만

어찌 절에서 잔혹한 살생을 하랴 싶어 참고 한참을 지켜봤더니

이녀석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죽은 체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하찮은 미물도 이럴진대 하물며 인간들이야 오죽하랴.



고달사지로 가는 길에 멋진 조경의 블루헤런골프장을 지나서 갔다.

예전에는 클럽700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골프장도 부침이 많은가 보다.


아뭏든 인간도, 나라도, 민족도, 종교도, 가족도 흥망성쇠를 거치는 법!

지금 당신의 삶이 화려하다고 언제까지 그럴 것 같은가?

우리는 폐사지의 굴곡에 교훈을 삼고 항상 겸손해야할 것이다.


  




고달사지 답사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갔던

식당의 정원에서 만난 보기 귀한 흰 채송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