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도 우도에서의 2박 3일 휴가

배흘림 2015. 6. 25. 11:45

 

 

 

 

오랫만에 찾은 우도에서 2박 3일의 소박한 휴가

(2015. 5. 26~5. 28)

 

 

꽃님이 느닷없이 3일 간의 휴가를 받아왔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다음날부터 휴가라니.....

 

그래서 찾은 여행지가 "섬 속의 섬" 제주도의 우도였다.

항공권 예약을 밤 9시에 하고 곧바로 민박집까지 예약완료

 

다음날 아침 9호선 첫 전철을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3일간의 연휴가 끝나서 한산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외국단체관광객,

노인단체여행자들과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까지 더해 수속에 한참 걸렸다.

 

이번 여행은 우도에서만 지낼 것이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710번 버스를 탔는데 입석까지 꽉채우고 달렸다.

 

 승객 중 제주도민들은 불과 몇 분 안됐고 대부분은 성산포항까지

 가는 관광객들이었으며 70% 정도는 중국 자유여행자들이었다.

 

이처럼 수요가 많다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주공항에서 산항, 성산일출봉으로

직접 가는 버스노선을 신설해 주던가 아니면 버스증차라도 해야할 것이다.

실제로 90년대에는 제주공항에서 성산포항으로 바로 가는 노선버스가 있었다.

 

아뭏든 710번 버스는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사려니 숲길 입구와

삼다수 숲길이 있는 교래리를 통과해 성산포항에 데려다줬다.

 

성산포항 대합실 역시 우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그에 따라 우도를 운항하는 배도 쉴 새 없이 항구를 드나들었다.

 

 

 

 

 

우도로 가는 여객선 위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90년대 중반 우도를 처음 밟았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의 우도는 불편함 그 자체였다.

식당도 두세곳에 불과했고 현대식 숙박시설은 전무했으며

담수화시설이 없어서 플라스틱 양동이에 빗물을 저장했다가 썼다.

 

샤워도 물론 그 물로 했는데 설령 물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쓴다 싶으면 주인할머니한테 한소리 들기도 했었다.

아마 지금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겠지

 

 

 

 

 

예전 우리가 우도에 다닐 때는 분명 천진항 하나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예약한 민박집 주인이 꼭 천진항행 배를 타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그 이유는 하우목동항이 새로 만들어졌고 그쪽으로도 배가 다니기 때문이었다.

 

 

 

 

 

바다에는 해녀복장을 갖췄으나 물질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한 사람들이 보였다.

해녀라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서 물질을 할텐데 해녀학교 학생들인지?

아니면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일까?

 

 

 

 

 

우도에는 성산포항으로 갈 수 있는 항구가 천진항, 하우목동항 두군데 있으며

천진항에는 대합실이 두 군데 있는데 이는 선박을 운영하는 회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예전 내 기억은 우도의 음식은 맛은 없고 가격만 비쌌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건 우도 원주민들도 인정하는 점이니 오해마시길......

그러나 2발 3일 우도 체류 중 먹은 음식들은 많이 발전해 있었다.

 

  

 

 

 

점심 먹고 민박집에 짐을 풀고서 서서히 방랑자의 발동을 걸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은 이 렌트 오토바이 집에서 이루어졌다.

사진에서 보이는 엉덩이가 펑퍼짐한 젊은 친구는 김주혁 씨가 나온 영화 홍반장처럼

우도 어디서든지 "반장"으로 통하는 재미있는 친구로 친절하고 사교성이 좋은 친구였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우도를 찾는다면 이 집에 가서 먼저 반장을 찾고 반장에게

5월말에 들렀던 50대 부부의 글을 읽고 왔다면 아마 좋은 서비스를 받으실 것이다.

 

이 집에서 빌려주는 주 상품은 2시간에 2만원 하는 두 바퀴 달린 스쿠터와

2시간에 3만원을 받는 지붕이 씌워진 세바퀴 달린 전기스쿠터가 있다.

이 외에도 자전거도 빌려 주는데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2차대전 때 독일장교들이 타고 다녔을 법한 삼륜오토바이로

우도에 오직 딱 한대 있는데 반장이 일하고 있는 대여업소에 있다.

 

 

 

 

첫 날 우도 유람시 우리의 발의 앙증맞은 자태

 

우도는 중간에 한 번씩 쉬면서 둘러봐도 두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렌트업소들은 두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망루등대

장롱면허소유자이자 초보운전자인 꽃님께서 운전하신 차에 동승하느라

조마조마한 마음에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서 눈도 마음도 시원하고 느긋하게 확 트인 바다를 감상했다. ㅎㅎ

 

 

 

 

봉수대(망루)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라는 의미로 한 소식을 전하던 조선시대의 군사통신시설이다.

고려시대부터 봉수를 사용했으며 제주에서는 조선 세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했으며 1895년에 봉수제는 폐지됐다. 

 

 

 

 

 

 

 

 

 

 

 

 

 

 

 

 

 

우도에서는 땅콩농사를 많이 짓는만큼 땅콩이 우도의 특산물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땅콩아스크림집이 있었다.

아마 땅콩을 많이 먹는 중국인들이 좋아할 듯......

 

 

 

 

 

 

 

 

천진항 등대와 출항대기 중인 카페리

 

 

 

 

우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카페리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사람들과 차를 실어 날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도를 그저 한나절 여행지로 생각해서인지

오전에 들어왔다가 한바퀴 돌고 오후에 떠나느라 천진항에는

 우도를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피난의 행렬처럼 이어졌다.

 

실제로 오후 5시가 넘으니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던 여행자들로

 붐비던 섬이 썰렁해졌고 6시가 넘으니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내 경험으로는 먹거리와 놀거리가 부족하더라도

우도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1박 2일은 필요할 듯한데......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를 말리는 중으로 우뭇가사리 역시 우도의 특산품이다.

 

 

 

 

 

4시 30분에 일어나 전철 첫 차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7시 제주행 비행기

그리고 제주 시외버스터미널, 다시 배를 타고 이동한 길고 긴 하루의 해가 저물어간다.

 

 

 

 

 

첫 날 저녁 회를 먹은 식당으로 다른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아버려 겨우 찾은 식당이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고 다시 우도를 찾는다면 이 집을 다시 찾을 것이다.

 

 

 

우도에서의 2일째

 

 

우도에서의 2일째 아침은 우도봉을 지나 검멀레해수욕장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우도에 다녀갔던 때는 아이가 너무 어렸고 우도내 교통도 지금처럼 원할하지 않아

우도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었기에 우도봉에 오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라산과 다랑쉬오름 등이 잘 보이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우도에서는 숙박시설 신축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우도봉에서 내려오며 이내 "반장"이 근무하고 있는 우도렌트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간 첫 목적지는 하하호호란 제주흑돼지햄버거집으로 빅버거 가게다.

사실 제주 본섬에도 빅버거 집이 서귀포와 제주시 등 몇군데 있다.

 

 

 

 

 

우리가 먹은 햄버거는 마늘햄버거로 1인분치고는 많고

둘이 먹기에는 부족한 딱 1.5인분의 양이었고 패티는 조금 뻑뻑한 느낌(?)

그러나 이 집에서 받은 친절과 서비스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전도연 씨가 해녀할머니와 손녀의 1인 2역을 해낸 영화 "인어공주"촬영지

그 때 우편배달부 역을 맡았던 박해일 씨의 미소는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인어공주 촬영지에서 바라본 망루등대

 

 

 

 

환해장성

우도는 왜적의 침입이 잦았고 특히 이 지역은 비양도와 가깝고

왜적선이 교대로 머물고 침입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축성을 했다.

 

 

 

 

 

징한 일본의 침략 본성이란?

고려시대에 전북 남원까지 침입해 도적질을 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제 집인양 수시로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고 조선백성들을 못살게 굴더니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는 핑계로 들어와 남의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의 댓가로 조선을 차지하여 식민지로 만들어 악랄하게 착취, 수탈하고

이제는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임을 슬쩍 지우고 헌법도 고치고 다시 재무장하여

군국주의를 부활해서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그리고 교활한 아베! 그걸 미화하는 친일 뉴라이트!

 

역사는 반복하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 모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할 때다.

 

 

 

 

 

오성덕 굴

 

그닥 문화재의 가치는 없어 보이나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각별한 곳일텐데

 표지판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찾는 이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성덕 굴은 오성덕이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박해가 심해지자

이 굴로 숨어 들어가 죽을 때까지 살던 굴이라는데 굴의 입구는 성인이

겨우 들어갈 크기로 굴 속에는 한사람이 겨우 숨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역시 잠이 최고의 보약이여~~

 

 

 

 

불턱

불턱이란 `불을 피우는 자리`를 뜻하는 제주어로 해녀들이 옷을 갈아 입거나

물질을 하고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던 공간으로 제주 해녀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불턱

불턱은 위 사진에서처럼 네모형으로 된 것도 있고 원형으로 쌓은 것도 있다.

 

 

 

 

방랑자의 발이 돼 주었던 자전거

 

 

 

 

 

자전거는 원래 4시간에 5천원 정도인데 우리에게는 24시간에 5천원이란 파격적인 금액에 빌려줬다.

그래도 미안해서 저녁에 반납하려고 갔더니 이동수단도 마땅찮을텐데 우도를 뜰때까지 쓰라고 편리를 봐줬다

이 글을 통해 다시한 번 일면식도 없던 우리 부부에게 편의와 친절을 베푼 반장한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제주의 돌담

 

 

 

 

방사탑

제주의 방사탑은 마을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기운이 허하다고 믿는 곳에 액운을 막으려고 세운 돌탑이다.

 

 다른 지방의 장승과 솟대처럼 액을 막고 방사의 의미를 지닌 미륵신앙의 흔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해상의 안전과 아이를 낳게하고 보호해 주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우도씨

우리가 간식으로 호떡을 먹었던 집으로 규모가 상당히 큰 반면

개업한지 불과 두 달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썰렁한 편이었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자리가 아닌 거쳐가는 길목이기에

맛관리와 홍보를 잘 해야 승산이 있을 거로 생각된다.

 

 

 

 

지미스

검멀레해수욕장 앞에 있는 땅콩아아스크림의 원조로 불리는 집으로

 앞의 우도씨와 달리 검멀레해변 앞에 있우도일주버스투어 정류장이

옆에 있어서 입지조건이 좋고 이미 널리 알려져 쉬지않고 손님들이 드나 들었다.

 

가게 건너편에 테라스 테이블이 있고 2층에도 테이블이 있어서

절경을 감상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린 한라봉샤베트를 먹었던 걸로 기억난다.

 

 

 

 

당(돈짓당)

당은 마을 주민들의 모든 걱정을 지켜주며 여러 액운도 막아 주는

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자 그 신이 거처하는 장소를 말한다.

 

척박한 농토와 거친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주민들의 일년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며,

마을과 개인의 안녕, 풍년, 풍어를 기원하던 곳이자 마을공동체의 문화유적지이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규모가 상당히 클 것 같았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아주 작았다.

크기는 세워져 있는 초와 대비를 하면 짐작할 수 있는데 뭐든지 크게 만들려고 하고

크게 만들어야만 믿음의 대상이 되고 오히려 믿음의 크기를 재는 척도가 되는 요즘에

 믿음과 크기는 별개라는 듯이 이렇게 작고 소박한 문화와 신앙의 존재에 놀랐다.

 

 

 

 

웃우뭇개의 슬픈 이야기

 

옛날 웃우뭇개(상우목동)에 손씨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건강하고 잘생긴 뱃사공인 손씨가 인천에 가게 되었다.

 

인천에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양반집에 기거하게 됐는데

그 집에는 어려서 양반집 아들과 정혼하였으나 약혼자가 급사하여

졸지에 청상과부가 되어 독수공방을 하고 있는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전부터 처녀는 장부다운 손씨를 흠모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날씨마저 악화돼 손씨의 체류기간이 두 달이 더 되었다.

 

결국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 사실을 안 안주인이

딸을 불쌍히 여겨 제주로 가서 사는 조건으로 둘을 허락하였다.

 

손씨와 처녀가 제주로 가려 했으나 여자를 배에 태워줄 수 없다는 말에

손씨는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혼자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처녀는 선창가에서 떠나가는 배를 망연히 바라보다 투신자살을 했고

몇일 후 손씨가 웃우뭇개에 도착했을 때 처녀의 시신이 당도해 있었다.

 

손씨는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지만 그 후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손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손씨의 자식들도 잘 살지 못했다.

 

 몇 년 후 사실을 안 그의 자식들이 정성을 다해 그녀의 무덤 앞에서 제를 지냈더니

그때부터 손씨의 자식들이 잘살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우도에서의 2일째 여정을 마무리하며 지는 해를 담았다.

 

2일째 저녁은  산호모래해수욕장(서빈백사) 부근에 있는 회양과 국수군에서

회를 먹었는데 이집은 회국수 맛이 일품이며 저녁 장사를 안할 때가 많다.

 

이집 사장님은 우도원주민 출신으로 우리 가족은 담수화시설 전부터

우도에 여행을 다녔다는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한라산 소주를 곁들여 회를 먹고 내 생애 처음으로 음주운전을 했다.

반장이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ㅎㅎ

 

 

 

 

 

3일째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와 반장한테 자전거를 반납하고 9시 배를 타고 우도를 떠났다.

서울로 갈때는 항상 하루를 꽉 채우고 밤 9시 전후 비행기를 타는데 이번에는 달리했다.

 

제주시로 갈때는 우도로 갈때 탔던 710번를 안타고 7백여m를 걸어서 701번 버스를 탔다.

굳이 701번 버스를 탄 이유는 제주 중산간지역을 지나는 710번 버스보다는

제주도 남쪽 해안을 끼고 달리며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많이 타고 내리기에

 지역분들의 생생한 제주어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