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셀라론계단 (Escadaria Selaron)

배흘림 2018. 7. 9. 11:59



개인의 땀으로 완성한 예술품 셀라론계단을 본 후 집으로

(2018. 1. 19)


남미여행의 마지막 날인 브라질 히우에서의 여정도

마무리 되고 있었고 마지막 투어는 셀라론 계단이었다.


셀라론 계단은 개인여행으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곳이었고

남미여행 한 달 내내 과잉이 얹어진 유럽풍의 성당들만 봐온 터라

현대식으로 지어져 독특하다는 메트로폴리탄 성당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현지여행사의 투어코스에는 셀라론 계단만 들어 있고

메트로폴리탄 성당은 주변 치안이 나쁘다는 이유로 빼놨다.

아쉽긴 하지만 셀라론 계단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셀라론 계단으로 가는 길의 그래피티를 감상하며 가는데

여기도 빈민지역이라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우리나라는 "빈민가 = 정이 오가는 동네"라는 등식이 성립되는데

남미의 빈민가는 곧 우범지역과 동일어로 쓰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가 그들을 빈민으로 만들었고 도시의 주변부로 내 몰았나?

오랜 식민지와 침략자에 기생하던 이들이 만들어낸 계층이 아닌가? 

범죄는 처벌 받아야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고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7~8개의 그래피티를 감상하며 걸으니

여행자들이 몰려있는 셀라론 게단이 나타났다.





셀라론 계단 초입에는 관광객은 물론 노점상도 많았다.






셀라론 계단은 브라질의 국가나 히우 지 자네이루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칠레의 예술가 셀라론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특이하고 놀랍다.






호르헤 셀라론이 브라질 히우의 빈민촌에 정착하여

1990년부터 슬럼가 215개의 계단에 타일을 붙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의 작업이 세계 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다양한 타일을 보내줘 지금의 관광명소로 탄생했다.





호르헤 셀라론은 타일 작업을 완성시킨 후 2013년에 사망했다.


























































계단이 215개인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더니 길이 나왔고 주민들이 오갔다.


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해 주민들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니 대충 여기서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갔다.


여기 주민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북촌이나 서촌 더 나아가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민들처럼

자신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관광객들에게 노출되는 게 싫지 않을까?


물론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할 일이겠지만

그것는 소수만이 누리는 혜택일테고 자본가들만 신날테니 말이다.






셀라론 계단 구경을 마치니 3시경이 됐다.

히우공항에서 7시 출발이라 4시간이나 남았지만

히우공항으로 가는 길의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갔다.






히우공항에서는 선물용과 우리가 먹을 요량으로 커피를 사려는데

브라질 국내선이어서인지 면세점의 상점들 규모가 영세했다.


심지어 신용카드도 받지 않는 곳이 많았고 생수를 사려는데

 달러를 안 받고 브라질 헤알만을 요구해서 물도 사지 못했다.


커피판매하는 곳도 겨우 찾아 250g짜리 커피 5봉지

(개당 45헤알 약 12,500원 / 총 225헤알)를 구입했다.






우리의 귀국 여정은 히우를 19:05에 출발, 상파울루 20:20 도착하여

22:35에 상파울루를 출발하는 항공이라 환승 시간이 두 시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히우에서 1시간 20 정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상파울루공항에서 국제선으로의 환승이 1시간 남짓으로 매우 촉박했다.


내심 우리 짐이 실려있는데 두고 가지는 않겠지 안도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발은 뛰고 있었다.

상파울루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의 환승통로는 왜 그리도 길고 멀던지

아뭏든 영화에서 특수임무를 띤 정보원처럼 열심히 추월하며 뛰고 또 뛰어 Safe~~






이번 남미여행에 라탐항공의 장거리 국제선을 두 번 이용했다.

그 중 파리행 승무원은 우리나라 승무원들처럼 억지 웃음을 짓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즐기면서 자연스런 웃음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 승무원의 태도나 서비스는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상파울루에서 파리 드골공항까지는 10시간 50분이 걸려

13:00경에 도착했고 6시간 동안 환승 대기했다가

19:00에 출발하는 아시아나를 타고 다음 날인

1월 21일(일) 13:50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50대 중, 후반의 부부가 한 달간의 남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했다.

물론 산티아고에서의 위조지폐사기도 당했고 꽃님이 고산병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우리와는 너무 많이 다른 자연을 봤고 체험했고 짧지만 남미인들과 교류하면서

작고 소소한 즐거움을 체득했고 그것들을 추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항공과 호텔에 마추픽추, 성스러운 계곡, 우유니 소금사막,

토레스 델 파이네, 페리토 모레노빙하, 히우 지 자네이루 등의

필수투어가 포함돼 있었고 여행사에 지불하는 금액은

1인당 880만원 × 2인 = 17,600,000원이었다.

(선결제 15만원 × 2인 = 30만원 할인된 금액)


그 밖에 자유여행시 경비로 2,250달러(2인/ 240만원)와

신용카드로 2십만원을 사용해서 총 2천 2십만원 정도 사용했다.


꽃님은 평소에 멀미가 심해 나스카 경비행기 투어와

우수아이아에서의 펭귄섬 투어를 포기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1인당 250달러 정도의 비용이 절약됐는데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웃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