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칠레 아따까마, 찰라의 추억

배흘림 2018. 5. 26. 17:16



불과 14시간 동안 머물렀던 아따까마

(2018. 1. 5)

아따까마 성당


아따까마는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사막지대로

달의 계곡, 무지개계곡, 별투어 등 관광업으로 유지해 가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작은 만큼 성당도 아르마스광장도 소박했다.

단, 여행자거리는 풍성해서 각종 숙소와 레스토랑, 기념품점,

투어를 진행하는 여행사, 환전소 등은 즐비했다.





관공서 건물


볼리비아 국경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30분

출국심사를 받은 후 칠레버스로 갈아타고 곧바로 아따까마로 향했다.


해발 4천m대의 알티플라노에서 2400m의 아따까마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란 전혀 없이 거칠 것 없는 내리막만 존재했다.


그리고 우유니공항부터 2발 3일 동안 거의 비포장도로만 달렸었는데

국경을 넘자마자 칠레 쪽 도로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로 변했다.


남미 국가 중 최빈국 볼리비아와 최고 부국 칠레의 차이점이

국경을 마주한 도로에서부터 극명하게 나타났다.


인접한 두 나라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며 여행 전에 접한 19세기 말

볼리비아, 페루 동맹군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칠레와 벌어졌던 남미태평양전쟁(초석전쟁)을 떠올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아따까마는 원래 볼리비아 영토였는데 전쟁의 패배로

볼리비아는 아따까마를 포함해 바다를 빼았기고 내륙국가로 전락했다.

두 나라는 전력 면에서 우세했으면서도 혼란과 분열의 정치로 패배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의 따윈 무시해버리는 국가주의

실제로 그들이 인구 8천만 명의 통일국가 출현을 환영해줄까?

그런데도 국가보다 자신의 정파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몰두하며

반민족 적인 행태를 보이는 무리들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부국과 빈국, 부자와 가난한 자, 억압과 착취 등

아따까마로 가는 길은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여정이었다.





질박한 아르마스광장


볼리비아출입국사무소에는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칠레출입국사무소에서 농산물 검역 등 까다로운 심사를 받고

아따까마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돼 있었다.


달의 계곡 투어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이미 4시에 마감, 출발했고

결국 "달의 계곡" 투어는 라파스에서도 아따까마에서도 모두 하지 못했다.





전세계 여행자들로 넘치는 여행자거리


먼저 50달러를 환전했다.

1달러에 600페소로 30,000페소를 받았다.






아따까마에서는 호텔을 나서면서 DSLR 카메라는 놓고 나왔다.

그냥 걸으며 꽃님과 대화하고 눈으로만 즐기고 싶었다.




Pizzeria El Charrua


저녁을 먹으러 치킨집에 들어 갔는데 온통 기름냄새에 찌들어 있었다.

나야 참을 만하지만 꽃님께서는 참기 힘드실테니 Plan B로 피자를 잘하는

맛집을 찾아 갔는데 테이블이 너댓개 정도 있는 아주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아보카도피자(7,400페소)와 스파게티(5,500페소), 콜라 1캔(1500페소)을

 먹었는데 세금 10% 포함 15,800페소(28,000원)가 나왔다.

칠레물가가 남미에서 가장 비싸고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더니 실감이 났다.





일부 사진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차용


우리가 묵은 숙소 Irona Tolache Hotel은

아따까마 외곽에 있어서 도보로 20분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방은 리셉션이 있는 건물 주위로 방갈로가 나열된 독특한 구조였다.


오후 5시 도착했으니 아따까마에서는 달의 계곡투어 등을 전혀 못했고

다음날 새벽 6시 체크아웃으로 아따까마의 추억은 전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