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잉카 거석 문화의 진수, 삭사이와망(Sacsayhuman)

배흘림 2018. 3. 23. 12:11



커다란 바위로 레고를 맞춘 듯한 삭사이와망

(2017. 12. 29)


이 날의 일정 중 마지막 행선지인 삭사이와만에 갔다.

원래는 우르밤바로 내려가서 다음날 다시 쿠스코로 올라 와

삭사이와만에 가려 했는데 그렇게 하면 다음날 일정이 빡빡하고

또 어느 정도 고산에 대한 적응이 된 듯하여 삭사이와만에 가기로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삭사이와만까지는 불과 1Km가 조금 넘는 거리인데

도로가 구불구불해서인지 느낌상 한참을 올랐다.


그렇지 !! 삭사이와와망은 퓨마의 머리부분에 해당한다는데

아무래도 머리까지 올라가려면 힘이 들겠지... ㅎㅎ


그리고 삭사이와만이 해발 3,500m 정도라

해발 3,400m의 쿠스코와는 100여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산증세가 있는 이들에게는 이 100m 차이도 큰 것인지 꽃님은 무척 힘들어했다.





매표소 앞에 있는 장식인데 단순하면서도 잉카를 잘 표현한 듯하다.






쿠스코와 성스러운 계곡 등 잉카유적지를 보려면 종합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10일 동안 14군데의 유적지를 입장할 수 있고 금액은 130 Sol (41달러) 이었다.

그런데 유독 살리네라스만 입장료(10 Sol)를 따로 받았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보니 피삭, 친체로, 모라이, 오얀따이땀보 4군데 입장권을

70솔에 구입했다는 후기가 있던데 쿠스코에 오래 있을 형편이 안 된다면

오히려 알짜 네군데만 보는 이 티켓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잉카원주민인데 미소가 참 아름답다.






입구를 지나 넓은 터에 서니 야트막한 산자락에

거석들이 제멋대로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 맞물려 작은 틈새도 없이 세워져 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저 큰 바위들을

씨줄과 날줄 맞추듯이 어찌 사람 손으로 쌓았을지?

게다가 저 바위들은 90Km 나 떨어진 곳에서 옮겨온 것들이라니


당시 잉카는 청동기문화에 머물고 있었고 남미에는

말이나 소가 없었으며 수레바퀴를 만든 흔적도 없다니 불가사의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크메르제국은 코끼리를 이용해 바위를 옮겼다는데

삭사이와만은 캄보디아와 달리 험준한 안데스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특히 난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다.

현대 기계와 장비를 이용해 돌을 쌓으라 해도 이처럼 가능할까?






한가지 애석한 것은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이곳의 돌을 가져다가

성당과 집을 짓는데 사용하느라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라 한다.

마치 로마 콜로세움의 돌을 빼서 성당과 집을 지은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마추픽추처럼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돼 있다면

어쩌면 마추픽추보다도 더 찬란한 잉카유적으로 인정받지 않았을까?







당시 현장에서 볼 때보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다시 보면서

잉카인들의 경이로운 솜씨에 더욱 더 감탄과 놀라움이 더해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곳 삭사이와만에서 열리는 안티라이미축제가 보고 싶다.

안티라이미축제는 6월에 열리는 페루최대축제로 태양신에게 한 해의 감사와

 다음해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남미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안티라이미축제는 삭사이와만과 아르마스광장, 코리칸차에 이르는 구간에서

잉카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9대 황제 파차쿠텍 잉카를 모시고 퍼레이드를 하며

잉카시대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다는데 볼 기회를 만들고 싶다.






페루는 우리와 정반대니까 6월이면 가을 내지는 초겨을일테니

우리의 추석, 서양의 추수감사절이라 생각하면 될 듯......













쿠스코의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여기서의 야경도 멋질 듯하다.






쿠스코의 전망대 역할도 함께 하는

크리스토 블랑코(Cristo Blanco) 예수상





껜꼬 (Qenqo)


Qenqo는 케추아어로 지그재그 즉, 미로라는 뜻이며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점도 쳤으며 미이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들으니 잠시 찬바람이 쏴아하고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동굴 안에는 탁자처럼 만들어진 제단이 있어 제물을 바치던 곳으로 추정한다고







내부는 어두운데다 공교롭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가는 바람에 셔터 스피드를 확보하는 게 힘들었다.

사진은 죄다 흔들리고 제목만큼 지그재그라 도저히 업로드가 불가상태다.






Puca Pucara

삭사이와망에서 우르밤바로 가는 길에 들어가지는 않고 잠시 쉴때 멀리서 찍었다.


예전 잉카시대의 쿠스코에는 왕족과 귀족 등 선택된 사람들만 살수 있었고

쿠스코에 가려면 이 곳에서 심사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했다니

지금의 출입국관리소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될 듯하다.


Puca는 붉은,  Pucara는 요새라는 뜻이고

 쿠스코로 통하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이 시설물을 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