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남미의 모든 길은 페루 쿠스코로 통한다

배흘림 2018. 3. 21. 14:44



쿠스코 아르마스광장과 대성당, 헤수스성당, 12각돌, 산페드로시장

(2017. 12. 29)


드디어 잉카의 고도였던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에 섰다.

쿠스코는 원주민 케추아어로 "세상의 배꼽"이란 뜻이라 한다.

그럼 잉카인들은 쿠스코가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난 그 무엇보다도 해발 3,300m~3,400m의 쿠스코에서

나와 꽃님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었다.


둘 다 아무런 고산증세가 없는 듯하여 안심하였으나

한시간 정도 지난 후에 꽃님은 두통을 호소했다.


물도 마시고 코카잎도 씹고 물병에 코카잎을 넣어 우려

마시기도 했지만 한 번 온 두통은 가시질 않는지 고생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제 아무리 비경이라도 고산병 앞에서는 속수무책!!


페루사람들은 고산병을 "잉카의 복수"라 하고

 실제 고산병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적응해야 한다.






"유럽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남미의 모든 길은 쿠스코로 통한다."


쿠스코는 잉카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때의 인구가 100만 명이 넘기도 했으며

쿠스코를 중심으로 약 4만 Km에 달하는 잉카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길에는 5Km 마다 챠스키(전령, 파발꾼)들이 배치돼 있어서

하루에 240Km 거리까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9대 잉카 파차쿠텍


잉카제국의 전성기를 구측한 9대 잉카 파차쿠텍은 잉카제국의 영토를

콜럼비아에서 아르헨티나 북부지역까지 넓혀 대제국을 건설했고

태양의 신전인 코리칸차와 삭사이와만 요새도 축조한 황제다.






카페 2층 테라스에서 아르마스 광장을 내려다 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려 했건만  갈 곳, 볼 것 많고

살 것도 많은 쿠스코에서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쿠스코대성당은 입장권이 25 Sol (약 8달러)로

비싼 편이었고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였다.


대성당은 쿠스코를 대표하는 성당답게 웅장했으며

원주민을 닮은 검은 피부의 예수상이 독특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는데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페루 전통음식인 꾸이와 치차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뒤를 돌아보는 배신자 유다 대신에 침략자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리마대성당에서는 침략자 피사로를 너무 환대하는 느낌에 의아했으나

쿠스코대성당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아무런 고산증세가 없는 듯하여 안심하였으나

한시간 정도 지난 후에 꽃님은 두통을 호소했다.


물도 마시고 코카잎도 씹고 생수병에 코카잎을 넣어

우려 마시기도 했건만 한 번 온 두통은 가시질 않는지

대성당에서 쉬면서 적응하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이길 반복했다.





쿠스코대성당을 정면에서 봤을 때의 좌측





대성당 문의 문양





라 꼼파니아 데 헤수스 성당

잉카제국 11대 황제의 궁전에 세워진 성당으로 파사드의 조각이 예술품이었다.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코리칸차를 보기 위해

성당 내부 관람을 생략하고 파사드도 대충 훓고 지나간 것이 아쉽다.







파사드의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쿠스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코스인 "12각돌"


잉카의 석재 기술을 이 한장의 사진으로 설명할 수 있는 12각돌을 보며

잉카인들은 크고 무거운 돌을 흙 다루듯 다듬고 주물렀을 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석탑들과 서산 백제 마애삼존불상 등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석재기술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잉카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저 아저씨는 인상도 무서웠는데

12각돌 가까이 다가서면 "만지지 마!" 라며 한국말로 외쳤다.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만지고 틈사이에 칼이나 종이가 들어 가는지를

확인한답시고 끼워 넣었으면 지구 반대편의 아저씨가 저럴까 싶었다.

여행자들이여! 제발 어글리 코리안은 되지 맙시다.






12각돌 앞에 있는 가게로 우리나라 연예인 사진을

걸어놓고 어눌한 우리말로 호객을 했다.

역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쿠스코와 성스러운 계곡 등 잉카유적에는 언제나 원주민과 야마가 있었다.

이들은 사진모델이 돼 주고 약간의 돈을 받았다.






잉카시대 남미에는 말이나 소가 없었다는데 길이 꽤 넓고 정비가 잘 돼 있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폼페이의 도로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유물이 발견돼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라 한다.





코리칸차로 가는 골목길

기단은 기계로 다듬은 듯 하지만 위에 쌓은 돌은 자연미가 있어 나름 좋다.






산페드로 시장에 들어서니 속옷가게들 대부분이 노란색 속옷 위주로 팔고 있었다.

속으로 페루 사람들은 노란색 속옷만 입고 노란색을 무지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페루에서의 노란색은 행운을 상징하고

아울러 돈과 황금을 상징하기에 새해 선물로 노란색 속옷을 많이 준다고 한다.





앗! 남자분이 속옷가게 주인이다.






엄청난 크기의 팬티도 걸려 있다.

과연 저걸 입을 만한 여자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나는 봤다. 이카사막에서......ㅋㅋ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알파카 제품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여행 초반이라 짐을 늘릴 수 없어서 알파카 스웨터2벌을 구입했다.

두 벌에 60 Sol(약 2만원)을 불렀으나 55솔로 흥정하여 구입했다.


그리고 시장 안에는 간이식당과 빵집, 과일 가게 등이 많았는데

우리는 애플망고와 몇가지 과일을 구입하고 과일쥬스도 한 잔씩 마셨다.


여기 규칙은 특이해서 쥬스를 한 잔 다 마시고 나면 한 잔을 더 채워준다.

그러니 혹시 돈을 더 달랠까봐 거절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아르마스광장으로 돌아오니

커다란 개가 반기는 게 아니라 졸고 있다. ㅎㅎ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그나마 페루에서는 개를 많이 못 본 편이었다.

볼리비아와 칠레로 넘어가면 완전 개판으로 변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