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배흘림 2011. 12. 12. 23:23

  

《서평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김주영 외, 지식파수꾼)

 

 

 거제도하면 항상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저만치 앞서 가곤한다.

길이 좋아젔다해도 서울에서는 그리 쉽게 내달리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섬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산 출장을 마치고 마침 토요일에 여름방학을 한 가족들을

 부산역에서 만나 거제여행을 했는데 그것이 거제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경험이었다.

부산에서 마산을 거쳐 거제로 가는 길 역시 가깝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인터넷은 커녕 여행지도조차 변변치 않았던 시절 우린 거제로 들어가서 일단 눈에 띄는 파출소로 들어갔다.

누굴 만날때 첫인상이란 무척 중요한데 그 파출소에서의 첫 인상이 지금도 거제의 첫인상으로 소중하게 남아 있다.

 

누구는 파출소만 보면 지은 죄가 없어도 웬지 눈길도 주기 싫고 빨리 지나친다고들 하는데

그 누구보다 지역에 대해 잘 알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파출소를 종종 이용하는 편이다.

 

그 때 경장쯤의 계급이었던 키도 훤칠하고 매우 미남이었던 경찰관은 여러가지 거제여행지도와

안내서를 챙겨주며 상세한 설명과 함께 우리차가 국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수신호로 우릴 배웅해주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 앞에서 "아빠가 이 정도는 된다."는 체면도 세워준 고마운 거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자섬답게 숙박비와 음식값이 부산보다도 더 비쌌던 불편한 기억도 한켠엔 가지고 있다.  

 

1박 2일동안 몽돌해수욕장과 포로수용소, 해금강, 외도 등을 둘러보고 섬 일주 드라이브를 하고

 통영, 남해로 이동했는데 한국에서 두번째로 큰 거제를 1박 2일로는 내 눈에 다 담아올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몇차례 거제 여행을 했는데 그 역시 주마간산 격의 나들이였다.

 

 

거제는 세계2위 규모의 대우조선해양과 3위 규모인 삼성중공업이 있어 세계최대규모의 선박건조 도시다.

그 거제, 부자섬 거제가 문화가 숨쉬는 명품문화도시 되고자 힘쓰고 있다고 한다.

 

그 첫 걸음으로 청마 유치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시로 청마와 현대미술의 만남,

 그 결과물인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은 문학과 미술,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청마의 시세계와 쪽빛 바다같은 시어는 존중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일제말 청마의 행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기에 그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두번째로는 "시간이 멈춰 버리는 섬" "동백꽃과 팔색조의 섬" 등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

 지심도를 바탕으로한 작가와 재벌딸과의 러브스토리를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기획했었다고 한다.

 

그 세번째로 현존 문단의 내노라 하는 작가 15명과 화가 20명을 초빙하여 만든 결과물이 바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다.

 

참여 작가들의 명단을 보면 『객주』홍어』를 쓰신 김주영 씨를 필두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성석제, 전경린, 구효서 ,박상우, 하성란 작가 등 유명작가들이

 참여했다는게 놀라웠는데 그 먼 거제까지 그들을 불러올 수 있는 이유도 거제였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 행사를 기획한 전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김형석 씨의 인맥과 열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박상우 작가는 김동리 선생의 말을 빌려 "제주에서 돼지 열마리를 몰고 서울까지 걸어 가는 일보다

 작가 한명 비행기에 태워 서울까지 가는 일이 훨씬 힘들다."고 스스로 작가들의 개성 강한 면모를 은근히

과시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거제가 가지는 매력에 모두들 흠뻑 빠졌기 때문에 먼걸음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이야기꾼인 성석제 작가는 거제(巨濟)의 거(巨)는 크다는 뜻이며 제주도의 제와 같은 제(濟)는 건너다,

 구제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풀이하면서 거제가 나라의 위난을 세 번에 걸쳐 구제했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임진왜란 때의 옥포해전에서의 승리인데 난중 육상과 해상을 통틀어 첫 승리였으며

 그 옥포해전은 왜군이 전라도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뱃길을 막아 조선을 구하는 의미있는 전투였으며

 두 번째는 6.25때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피난민 1만 5천명이 거제로 왔을 때 거제는 이들을 구제했다.

 세 번째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거제의 조선산업이 침몰해 가는 한국경제를 살려낸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도 거제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쪽빛의 거제바다인데

그 물빛을 박상우 작가는 해이수 작가의 입을 빌려  4월말이 제일 좋다고 했고

 김지숙 작가는 붉게 물드는 소매물도의 낙조를 보며 영화『녹킹 온 헤븐스 도어』의

 천국의 문을 떠올렸다고 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소매물도는 행정구역상 거제가 아닌

 통영이지만 난 항상 거제의 저구항에서 배를 타고 소매물도에 들어 가기에.......

 

춘삼월이면 온통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는 섬 지심도는  "시간이 멈춰 버리는 섬", "동백꽃과 팔색조의 섬"

 이라는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얹고 싶다.

 제주 빼고 "한반도에서 봄을 가장 빨리 맞이 하는 섬"이라고.....

 

 해이수 작가는 지심도 섬의 모양을 천사의 한쪽 날개처럼 보이는데

 바다에 떨어져 젖어버린 탓에 그대로 섬이 되어 버린 천사의 날개 같다고 했다.

 

그 지심도는 거제시에서 폐교된 지심분교의 자리에 문인과 화가들을 위한

창작 레지던시를 만드려는 후보지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이 섬은 군사적 요충지여서 일제 때 일본군의 진지 등이 아직도 남아 있고

얼마 전까지 국방부의 소유여서 비교적 변형되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민간이나 관보다 군이 우리의 자연을 더 잘 보존하는 아이러니다.

 

전경린 작가는 고려 때 무신 정중부에 쫓겨 이 먼 거제까지 쫓겨온 의종과

 한여인의 경이로운 사랑에 대해 작가적 설명을 더해 맛있게 사랑을 표현해준다.

그리고 폐왕성의 무너진 성채의 쓸쓸함과 모든 죽음은 패(敗)이고 우리의 운명 역시 패라고 알려준다.   

 

구효서 작가는 지심도의 폐교에서 유신시절 구호공화국 시대의 잔재 속에서 "국어사랑"의 표어를 찾아

 우리가 자칫 비켜갈 수 있는 "동질"과 "동등"에 대해 설명하며 그 차이에 대해 큰 깨우침을 주고 있다. 

  

박상우 작가는 10년 전에 찾았던 거제와 너무나 변해버려 대도시의 풍모를 뽐내는 현재의 거제에서

10년전의 미지를 찾아 헤매다가 현재와 불화하는 마음, 과거의 미지를 지향하는 마음은

 결국 동일한 것이고 경계도 없으며 결국 현재와 불화하는 마음이 문제라고 깨닫는다. 

  

작가들답게 술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기에 맛에도 남다른 감각을 지녔을터

이현수 작가는 도다리쑥국과 멍게비빔밥을 해이수 작가는 고디탕을 예찬했다.

 

뭐든 잘먹는 나도 가끔 찾는 거제에서는 음식에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거제도도 전국화되고 보편화된 맛을 제공하고 변해가는 모양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공허할 뿐인데

해이수 작가의 글 중에 "마음 두는 법"이란 좋은 글이 있어 옮겨본다.

 

"제발 두리번거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세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마음을 두어야 그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마음을 두어야 피가 돌고 그곳에서 꽃이 피는 거예요."

 

 

작년에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이란 영화를 봤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던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전세계에서 오는 러브레터에 대한 답장을 하고 있다.

 

 한 여성이 그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편지를 발견하고 수 십년 전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거의 사랑을 찾아

 아직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 된 남녀를 만나게 해주는 즐거운 로맨스 영화였는데

행사를 주관한 전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김형석 씨도 거제가 이런 스토리가 있는 문화도시가 되길 원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2박 3일의 짧은 여정에 작가들이 거제의 풍광에 너무 취했었는지,

몇명은 너무 술에 빠져 있었던건 아닌지 더 좋은 스토리가 생성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지 않았을지 조금의 아쉬움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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