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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딛고 일어선 멕시코 출신 천재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 전시회

배흘림 2015. 9. 4. 17:35

 

 

 

고단했지만 아름답고 아팠지만 씩씩했던 프리다 칼로

(2015. 9. 3)

 

이번에 소마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열리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를 봤다.

 

난 프리다 칼로란 화가를 영화 "프리다"를 통해 알았다.

실은 영화를 본 직후에는 너무 극적인데다가 피카소, 트로츠키,

멕시코 혁명 등 다루는 폭이 너무 커서 허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난 그저 스토리가 좋았고 특히 음악 그 중에도 탱고와

"챠벨라 바르가스"가 부르는 "요로나(우는 여자)"가 좋았다.

 

그러다가 곧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알게 됐

영화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됐슴을 알게 됐다.

 

지금은 영화 프리다의 DVD를 구입, 소장하여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보며 즐기고 있다.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들의 사랑의 포옹

 

우주 속에 커다란 덩치의 디에고를 아이로 그려 프리다가 안고 있는데

이는 모성애를 표현하며 여신의 가슴에서는 젖이 흐르고 있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태우아나 차림의 자화상)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사고 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

- 프리다 칼로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

 

프리다 칼로는 아이가 없고 바람둥이 디에고로 인한 외로움을 동물들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원숭이, 고양이 , 토끼 등을 기르면서 사랑을 나눴다. 

 

 

 

침대에 앉은 자화상(나와 인형)

 

프리다의 그림과 삶의 흔적에서는 아이에 대한 강한 욕구가 보인다.

세 번의 유산을 통해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여인의 슬픔이 느껴진다. 

 

 

 

 

걸이를 한 자화상

 

 

 

드러난 삶의 풍경 속에서 겁에 질린 신부

 

 

여기까지가 이번 전시회에 걸린 그녀의 유명한 작품이다.

"두 명의 프리다" 등 그녀의 대표작 대여섯 작품을

꼭 보고 싶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모두 빠져 있었다.

주요 작품이 빠진 전시회는 허전했고 사기당한 느낌이다.

 

애당초 전시회 주최를 조선일보가 하는 것부터 찜찜했고

걔들이 왜 공산주의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주최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결국 프리다 칼로가 나를 움직였다.

 

 

 

두 명의 프리다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습이 행복하다

-프리다 칼로

 

 

 

 

난 슬픔을 익사시키려 했는데 이 나쁜 녀석들이 수영하는 법을 배웠지

그리고 지금은 이 괜찮은 좋은 느낌에 압도당했어- 프리다 칼로

 

 

 

 

혼 후 친정에 온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 칼로 즉 처제와

디에고가 간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긴머리를 스스로 잘라 버리는 장면이다.

 

평소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에게 머리를 길게 기르기를 원했는데

분노의 표출그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림에서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의 옷을 입었는지 몸에 맞지않은 큰 옷을 입고

손에는 가위가 들려 있고 한 손에는 한움큼의 머리카락이 잡혀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바닥에 흩뿌려져 있고 가위의 위치는 섬뜩하다.

 

영화 "프리다"에서도 이 부분은 강렬한 장면으로 묘사된다.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 칼로

 

 

 

 

프리다 칼로가 자신이 태어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눈썹을 진하게 그렸고

엄마는 벽의 액자에 담았는데 독실한 가톨릭신자이기에 성녀로 그렸다.

 

 

 

 

유모를 멕시코 여신으로 그렸고 유모에게서는 젖이 나오고

자신의 얼굴은 성인, 몸은 아이로 그렸다. 

 

 

 

 

자신의 가계도를 그렸는데 외가는 멕스코의 전통적인 집안이고

친가는 독일계로 아버지는 젊었을 때 멕시코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는 무신론자였으며 매우 합리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마 프리다 칼로가 다시 설 수 있게 한 첫번째 힘은 아버지라고 생각된다.

두번째는 말할 필요없이 그녀의 영원한 동지이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의 간청에 미국으로 가서 그린 작품으로 왼쪽은 멕시코의 문명 등을

 우측은 빌딩과 굴뚝 공장의 설비 등을 그려 대비함으로써

그녀의 향수병과 반자본주의 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이 그림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픈 작품이다.

세 번의 유산을 한 고통이 그림속에 녹아 있다.

 

 

 

 

 

 

침대 위에는 생선 등이 걸려있는데 수술 후

병원에서 강제로 먹는 고통을 이 작품으로 남겼다.

 

 

 

 

미국에서 수술을 해준 의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의사의 초상화를 넣고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천지창조를 보는 느낌이 든다.

 

 

 

 

디에고는 나의 모든것, 나의 아이, 나의 사랑, 나의 우주다 - 프리다 칼로

 

 

 

 

 

 

앗! 우리집 고양이와 꼭 닮았다

 

 

 

 

나느 결코 꿈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렸다 -프리다 칼로

 

 

 

 

내가 나를 그리는 이유는 너무 자주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

 

 

 

 

 

 

 

 

 

 

처절했지만 너무나 열정적이었던 삶울 살아

오히려 매혹적인 삶으로 보이는 프리다 칼로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