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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연희극 웰컴 투 중벵이골4 - 춤추는 상쇠

배흘림 2015. 9. 20. 19:46

 

 

 

에~헤 상사디~~야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웰컴투 중벵이골4 춤추는 상쇠

(2015. 9. 12)

 

필봉농악은 호남좌도 농악을 대표하는 판굿으로

1988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유산 제11-5호로 지정됐으며

2008년에는 임실필봉농악보존회진성 회장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됐고

2014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필봉마을 공연장인 필봉문화촌에서 약 2Km 떨어진 마을로 마을 뒷산이

삼각형으로 뾰쪽해서 이름 붙여진 오지마을이며 예로부터 중벵이골로도 불렸다.

 

 

 

 

 

공연은 우리네 전통 마당극 형식의 퓨젼마당극이다.

극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축하하는 공연이 끝나고

봉필의 인사말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된다.  

 

 

 

 

 

 

 

때는 1940년대로 비록 산간오지마을이지만 철마다 씨 뿌리고

곡식을 수확하며 사는 인심좋고 평온한 마을이었다.

 

 

 

 

이 때 마을에서는 두레굿이 한창이다.

봉산탐춤에서나 나옴직한 표현이 과장된 소도 등장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막바지 조선반도 모두가 그랬듯 일제의 수탈은 극에 달한다.

일제는 쇠로 된 모든 것들을 군수물자로 만든다며 공출하는데 상쇠의 꽹과리마저 뺏어가려 한다.

 

 

원래 씻김굿, 별신굿, 진오귀굿, 제석굿 등 우리의 굿은 예로부터 미신적인 성격이 포햠됐으나

실제로는 마을의 두레굿은 대동제 즉, 마을의 축제이자 마을잔치의 성격이 강했다.

 

그랬던 굿을 많은 사림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저급한 미신을 믿는 행위로 격하시켰고 현재 우리는 전통문화인

굿을 무당과 기복신앙을 믿는 이들의 기도행위로만 알고 있어 아쉽다.

  

 

 

 

그러나 일제의 총칼 앞에 마을사람들의 저항은

아무 소용이 없없고 결국 지켜내지 못한다.

 

 

 

 

공연 전 기념촬영에 응해 주셨던 일본 순사 다나까 역을 맡으신 이인엽씨

아무리 봐도 일제 순사하기에는 인물이 너무 너무 훤하시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시름에 차 있던 어느 날 상쇠 집안의 혼사 소식이 들려오자

 

 

 

 

마을은 잔치분위기에 휩싸이면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맨 우측의 아낙의 춤은 고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연상시켰다.

 

 

 

이윽고 함진애비를 필두로 함이 들어오고

 

 

 

즐겁게 결혼식을 올린다.

 

 

 

관객들에게 절하는 신랑, 신부

 

 

 

신방을 몰래 들여다 보는 동네 아낙들

 

 

 

 

도회지로 떠났던 상쇠의 어릴 적 벗들이 고향에 잠시 돌아와

옛 추억을 되살리며 멋진 가락을 연주한다. 얼씨구~~

 

 

 

 

 

감초역할로 극의 맛을 한껏 살려낸 아낙들과도 한 판 어우러지고......

절씨구~~ 

 

 

 

 

역시 마당극의 참 맛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인데

이 분은 마당극을 제대로 즐길 줄 아시는 듯......

거의 신들린 듯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자~알 한다~~ 얼~쑤

 

 

 

 

지화자~~ 조~오~타~~

 

 

 

때는 바야흐로 흘러 무대는 196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시절로 옯겨간다.

 

유아독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정권

새마을운동이란 미명하에 미신을 파타한다며 마을의 당산나무를 베려한다.

 

선봉에는 필봉마을 출신 면서기가 완장을 차고서 날뛰니

상쇠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그저 기가 막히고......

 

 

 

 

상쇠가 늙고 병들어 전주의 큰병원에 갔는데

일찍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해 아내는 근심이 가득하다.

 

 

 

 

늙고 병이 든 상쇠는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슴을 알고서

평생을 함께했던 꽹과리를 쓰다 듬으며 아들 봉필에게 물려줄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간곡하게 필봉농악의 대를 이어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굿이나 풍물의 시대는 저물었으니

다른 길은 찾겠다고 아비의 청을 뿌리친다.

 

 

 

 

곧 이어 아비의 죽음으로 마을에선 상쇠의 장사를 치룬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난 개인적으로 왜 이리도 상여소리가 좋은지?

진도씻김굿을 밤을 새며 봐도 피곤한 줄 몰랐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진도상여소리를 들으면 왜 그리 마음이 편안하고 오히려 흥이 나는지?

 

그런 면에서 가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 차분해지지만 침잠에 빠질

인생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까지 느끼지 못하니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인가?

 

 

 

 

인간문화재 양진성 임실필봉농악보존회장 님이

앞 소리를 메기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찰지던지......

 

 

 

 

 

아비의 49재를 앞두고 어미는 아들 봉필에게

아비의 해원상생굿을 부탁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비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미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도 친구들처럼 도회지로 나가 평범한 삶을 살면서 돈을 벌어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겠다고 오히려 한 번만 봐달라고 어미에게 부탁을 한다.

 

 

 

어머니는 간곡하게 봉필을 만류한다.

 

 

 

 

비록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었을지언정 굿은 삶의 원동력이었

대를 이어 전승하는 것 만큼 가치있는 일은 없다며 설득한다.

 

 

 

결국 어미의 애끓는 호소에 아들은 가풍을 지켜나가기로 화답한다.

 

 

 

 

이윽고 아들은 상쇠의 대를 물려받아 아비의 해원상생을 위한 진혼곡을

쇠로 두드리자 구천을 떠돌던 아비는 그제서야 편히 저승길로 떠난다.

 

이 장면과 상여대목이 이 마당극의 백미로 가장 인상 깊었고

아마 관객 모두에게 감동스런 명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이후 봉필의 전승에 대한 노력으로 필봉농악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마을에서는 굿판이 벌어진다.

 

 

 

 

 

 

 

 

 

 

 

 

 

 

마당극 춤추는 상쇠는 풍물놀이와 관객이 참여하는

뒤풀이 흥겨운 한 판으로 흥겹고 재밌게 마쳤다.

  

 

 

 

2015년 공연은 5월 9일부터 9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7월과 8월은 금, 토 공연)

저녁 8시에 전북 임실군 필봉문화촌 취락원에서 상설공연으로 열렸다.

금년 공연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고 나는 내년에 꼭 다시 보러 갈 예정이다.

 

 

 

※ 이 글은 임실군에서 주최한 공공팸투어에 참가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