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픔을 소장한 우피치미술관

배흘림 2015. 5. 9. 21:47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이 호강했던 우피치미술관

(2015. 3. 11)

우피치미술관

 

우피치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의 강력한 후원자였

메디치가(1397~1743년)에 대해서 알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다른 나라의 역사 그것도 한 가문의 역사를 굳이 알 필요도 없고

더구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메디치가가

암흑기였던 중세시대를 벗어나며 인간중심의 르네상스시대를 여는데

큰 동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유럽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원래의 메디치가는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에 불과했으나

당시 금융업을 죄악시하고 은행가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여기던 시절에 금융업에 진출하여 신용과 신뢰로 큰 돈을 벌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교황 요한 23세와의 인연을 꼽을 수 있는데

불법혐의로 투옥된 요한 23세를 아무런 조건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들여 석방시켜 주었고 석방된 후에도 갈 곳 없는

교황을 보살펴 줬고 죽은 뒤에는 영묘까지 만들어 줬다.

 

단지 고객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들의 가문과 은행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무런 댓가도 없이 도와주는 것을

교황청과 왕, 군주들은 주거래은행을 메디치은행으로 모두 바꿨다.

 

난 이 대목에서 한국유리(현, 한글라스)를 창업하셔서 유리의 자급자족을 이루고

경영에선 신용과 신의를 철칙으로 삼으셨고 또한 정의로운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독재정권과도 맞섰던 작지만 큰 거인이셨던 고 최태섭 회장 님을 떠올려 본다.



 

메디치가의 문장

 

천재적인 경영능력과 정치수완으로 메디치가를 유럽 최고의 부자 가문으로 만든 사람은

 국부라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로 항상 '겸손'을 신조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말을 타지 않고 당나귀를 타고 다녔으며 사람들에게 항상 공손히 절을 하였고

자신의 집도 귀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시장 옆에 호화스럽지 않게 지었다.

 

그는 대중이 가지는 질투심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로 하여금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메디치 가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또 한사람은 "위대한 자"로 불리는

국부 "코지모 데 메디치"의 손자 "로렌조 데 메디치"(1449~1492)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하여 양자로 삼아 플라톤 철학 등

인문학 교육을 받도록 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줬다. 

메디치가는 단순하게 권력과 금력만 가진 가문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여

 오페라장르가 발전하여 틀을 잡아가는데 일조했으며 서양식 식사예절을 정립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후원했고

아메리카 지명의 기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대륙행을 지원했다. 

 

또한 여성들도 입을 수 있도록 승마용바지를 만들어 최초로 착용했고

키가 작은 메디치가의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하이힐도 발명하는 등

실용적인 사고도 가졌던 듯하다.

  

 

 

 

메디치가문에서는 교황 레오 10세와 교황 클레멘트 7세 두 명의 교황을 배출했는데

특히 레오 10세는 로렌조의 둘째 아들 조반니로 미켈란젤로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당시 교황은 대부분 로마출신 중에서 선출했는데 피렌체의 상인 가문인 메디치가에서

교황이 선출됐슴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메디치가의 영향력이 컸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메디치가에서는 카테리나 데 메디치와 마리아 데 메디치 두 명의 프랑스 왕비도 배출했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두번째 교황인 클레멘트 7세의 후원을 받아

프랑스 왕자 앙리 2세와 결혼해서 왕비가 되었다.(좌측 사진, 1533년)

 

그리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에서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제자"로 불리워질만큼 군주론을 팀독하면서

인내함으로써 고난을 이겨내고 나중에 아들 3명을 프랑스왕으로 만들었다.

 

 

 

우피치미술관

우피치미술관은 `ㄷ`자 모양의 건물로 화려함이 제거된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건물이며

우피치라는 말은 사무실이라는 뜻으로 실제 메디치가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번성했던 메디치가도 코지모 2세 때부터 가문의 정신인 "겸손"을

이어받지 못하고 무능과 사치로 결국 18세기에 가문이 몰락하게 됐다.

이에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모든 재산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로레인 왕가에 넘겨 주었다.

 

 그러나 "신의 한수"라고나 할까 두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으니

첫째는 메디치의 모든 예술품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피렌체를 떠날 수 없고

둘째로는 예술품은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피치 미술관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메디치가의 미술품이 유럽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우피치미술관의 회랑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전리품과 전세계에서 강탈해간 작품들로 채워 넣었지만

 우피치미술관은 대부분 이탈리아 자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피치미술관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해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플레시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진촬영이 허용됐다.

바티칸미술관이나 산 피에트로대성당 등 대부분이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었다.

 

위와 아래 사진 모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인데

위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우피치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굳이 비교하는 이유는 직접 찍은 사진 모두가 조명과 이트밸런스의 부조화로 원작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그래서 직접 담아온 그림이지만 아무래도 홈페이지 그림이 원작과 가까울테니 홈페이지 그림을 올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책을 읽고 있는 마리아 앞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무릎을 꿇고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고 마리아가 놀라는 장면이다.

 

 

 

비너스의 탄생-보티첼리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세부 묘사,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성상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

프리마베라(봄)와 함께 보티첼리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데 두 작품 모두 우피치미술관에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미와 사랑을 상징하는 여신이며

로마식으로는"`베누스", 영어식으로는 "비너스"라고 부른다.

고로 아프로디테와 비너스는 異名同人이란 얘기!

 

아프로디테는 거품이라는 뜻의 "아프로스"와

유래라는 여성접미사 "디테"가 합쳐진 말이니

"거품에서 태어난 여자"인 셈이다.

앞으로+뒤태가 아니라는 말씀!

 

그림은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하고 있는데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자

아내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아들 크로노스에게 복수를 명한다.

어머니 가이아의 사주를 받은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남근을 거세해서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것이 지중해를 떠다니다가 바닷물의 거품과 어우러져 예쁜 여자 아이가 태어났고

큰 조개를 타고 떠돌며 아름다운 비너스로 성장하여 마침내 키프로스 섬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화면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안고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해변으로 밀어주고

있으며 오른쪽 여인은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비너스에게 망토를 건네주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왼손과 머리카락으로는 아래를 가리고 있는데

이는 "순결하고 정숙한 비너스"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비너스는 10등신으로 표현되었는데

얼굴과 목, 상체의 연결이 어색하다.

 

 

 

프리마베라(봄)-보티첼리

피렌체의 아름다운 봄과 문화를 찬양하고 있는 이 그림은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우측에 몸이 얼음처럼 시퍼렇게 칠해져 공중에 떠 있는 인물은

울을 상징하는 서풍 제피로스로 요정 클로리스를 붙잡으려고 하고 있다.

 요정은 서풍에게 잡히는 순간 꽃을 상징하는 플로라로 변신할 운명인데

세번째 꽃무늬 옷을 입은 여인이 바로 클로리스가 변신한 플로라이다.

 

중간에는 여신 비너스이고 비너스 위에는

아들 큐피드가 눈을 가린 채 화살을 마구 쏘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에 맞으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무조건 사랑에 빠져 드는데

 눈을 감고 쏘니 언제 어디서 맞을지 알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사랑이란 본디 그렇게 예고없이 다가오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여인들은 비너스의 세 시녀인 삼미신이며

맨 왼쪽의 오렌지를 따고 있는 인물은 소식을 전해주는 헤르메스(머큐리)로

날개가 달린 부츠를 신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며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준다.

 

또한 헤르메스는 상인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해서 상업을 중요시 여긴

 피렌체에서 특별히 공경받았기에 등장시켰을 것으로 추정한다.

---The Bridgeman Art Library 참조---

 

 글을 쓰다보니 미뉴엣과 첼로협주곡을 만든 작곡가 보체리니와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를 그린 화가 보티첼리가 점점 더 헷갈린다.

 

 

 

우르비노의 비너스-티치아노

 

먼저 1500년대 중반에 이런 누드화를 그렸고 또 그것이 허용됐다는 게 신비롭다.

그림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우르비노 공작부인이 모델이며

당시 귀족 부인의 누드그림은 통념상 무리가 있어서 비너스를 그린 것으로 둔갑시켰다. 

강아지는 충절을 상징하며 하얀 시트는 순수, 진홍색 침대는 사랑을 상징한다

 

 

수태고지-시모네 마르티니 리포 멤미

14세기에 제작된 시에나화파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시에나대성당에 걸려있던 그림이다.

 옷들의 우아한 곡선미,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와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예언에 당황하며 두려움과 수줍어 하는 마리아의 몸짓이 재미있다.

  중앙의 비들기는 성령을 상징하고 꽃병 속의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의미한다.

 

 

 

동방박사의 경배-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세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너무 어린 나이에 대작을 남겨 오히려 의심받고 있다고......

 

 

 

동방박사의 경배-로렌쪼 모나코

 

 

 

동방박사의 경배-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보티첼리

메디치가 사람들이 동방박사로 그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는 사람이 코시모 데 메디치

 

 

 

 

동방박사의 경배-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채, 자연주의적인 세부묘사와 능숙한 빛의 사용,

 혁신적인 공간과 형식을 도입하여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방박사의 경배-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목자들의 경배-판 데르 후스

 

 

 

성모대관-프라 안젤리코

예수가 성모에게 천상모후의 관을 씌워 드리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표현한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알브레이트 뒤러

 

 

 

성가족(톤도 도니)-미켈란젤로

둥근 창문 형태의 액자에 들어가는 원형그림을 "톤도"라고 부른다.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타의 두폭화 초상-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이 그림에 담긴 얘기는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군주 몬테펠트로가

별 볼일 없던 변방 우르비노의 경제를 안정시키고 정치, 외교의 터전을 닦고

문화적으로 꽃을 피운 인물이기에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라 좀 길게 적어본다.

 

우르비노 군주의 서자였던 몬테펠트로는 생계를 위해 용병으로 싸우던 중

작위를 물려받은 이복동생의 사망으로 22살의 어느날 갑자기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군소공국 우르비노 군주 자리는 빚 좋은 개살구였을 뿐......

잘못되면 조상탓이라고 했던가?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은 우르비노공국

 

결코 5백년 전의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닐쎄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현재 우리 모습 같아 씁쓸하다.

 

아뭏든 우르비노 백성들을 위해 몬테펠트로는 돈만 준다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나가 싸운다.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 가족들에게는 최대한의 보상으로 사기가 충천하니 싸움은 백전백승

 

이것이 진정 지도자의 덕목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것을......

그렇게 피의 댓가로 드디어 우르비노를 정비하고 영토도 넓히고 경제도 안정시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내를 잃고 24살이나 어린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타와 알콩달콩 살면서

딸 여섯을 낳았고 드디어는 50세에 일곱번째로 아들을 얻었으나 6개뤌 후 아내가 병으로 죽었다.

 

아내의 죽음 후 그는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내치와 학문에 몰두한다.

그리고 인문학과 예술에 많은 돈을 들여 후원하여 인문주의적 가치 구현에 힘썼다.

 

그림은 몬테펠트로가 28세에 마상 창 시합에서 오른쪽 눈을 잃고

얼굴에 큰 흉터를 지니게 되어 얼굴의 한쪽 면만을 그린 작품이다.

 

 

 

솔로몬의 심판-조르조네

 

 

 

파라오 앞의 아기모세 (불의 시험을 받은 아기 모세)-조르조네

 

 

 

메두사-카라조바

 

메두사는 그리스신화애 나오는 괴물이자 마녀로 여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하던 중 아테나여신에게 들켜 아테나여신에게 저주를 받아 흉측한 괴물로 변했다.

그리고 메두사를 직접 보는 사람은 돌로 변하는 마법에 걸리도록 했다.

 

아테나여신은 페르세우스를 시켜 메두사를 처단했는데

메두사의 얼굴을 직접 보면 졸로 변하기 때문에 청동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얼굴을 간접적으로 보면서 그녀의 목을 치도록 알려줬다.

 

머리가 잘린 메두사는 고통으로 입을 벌리고 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커다랗게 뜨고 있는 눈과 찡그리고 있는 눈섭은 흉측스럽다.

--두산백과 참조--

 

 

 

마에스타(옥좌에 앉은 성모)-조토(지오토)

조토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연결하는 중요한 화가이며

화가가 단순한 장인으로 대우받던 시절, 예술가로 존중받은 최초의 화가

 

 

 

 

성모자와 두천사-프라 필리포 리피

동시대인들 중 다채로운 삶을 경험한 화가로 종교화를 현실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

당시 유행한 의상과 머리모양을 그림에 그대로 적용했다.

 

 

 

방울새와 함께 있는 성모-라파엘로

아기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작별을 하는 장면으로 요한이 내미는 방울새를 쓰다듬고 있다.

 방울새는 수난을 상징하므로 예수의 수난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그리스도의 세례-레오나르도 다빈치(베로키오)

 

 

 

 

성 안나와 성 모자-마솔리노

 

 

 

성녀 유스티나의 순교-파올로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아들 조반니-브론치노

코지모 1세가 사랑했던 아내와 아들을 그린 그림으로

섬세하게 묘사된 드레스와 아이 얼굴 볼의 홍조가 인상적이다.

 

 

 

목이 긴 성모-지롤라모 프란체스카 마리아 마졸라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소 호화로운 옷을 입은 성모와 아이답지 않게 큰 체구의 예수,

성모 마리아의 비율도 과장되어 다리와 몸체는 그녀의 긴 목과 좁은 어깨와 대조적이다

  

매너리즘(기교주의)

1520년경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풍미한 미술 양식.

르네상스에서 추구한 완벽한 비율, 안정적인 구도와 조화를 포기하고

독창성을 지닌 그들만의 표현방식으로  신체비율을 늘이고 몸을 비트는 등

왜곡되고 과장된 새로운 표현방식을 고안해낸 기법과 새로운 경향이 매너리즘이다.

--세계미술용어사전 축약--

 

 

이집트로 피신하는 길의 휴식-코레조

 

 

 

그리스도 매장-로히에르 반 데르 베이든

 

 

성 프란치스코와 복음사가 요한-엘 그레코

 

 

 

신성한 알레고리-지오반니 벨리니

 

 

두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자-한스 멤링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피에로 디 코시모

처음 봤을 때 만화를 보거나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측 상단에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단하고

하늘을 날아 오면서 바위에 묶여 있는 여인을 봤다.

 

여인은 이디오피아 왕비 카시오페이아로 미모를 뽐내다

바다 요정들의 분노를 사 왕국이 큰 화를 입게 되었다.

 

이에 케페우스왕이 딸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치게 되었는데

이를 안 페르세우스가 괴물 케도스를 물리치고 안드로메다를 구해내는 얘기다.

 

 

 

플로리아노 성인의 순교-알트드로퍼

플로리아노는 로마군 장교로 스스로 기독교신자임을 선언하였고 많은

 기독교인들을 도와줬다는 죄명으로 몸에 큰 돌을 매단 채 엠스강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의 초상-라파엘로

메디치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는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로 미켈란젤로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함께 그려진 두 명은 조카들로 왼쪽에는 훗날 교황 클레멘트 7세가 되는 줄리오 데 메디치로

 라파엘로의 후원자였으며 우측에는 나중에 추기경이 되는 루이지 데 루시가 서 있다.

 

 

바쿠스-카라바조

카라바조는 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실제 인물을 모델로 그렸다.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다.

 

 

 

노인의 초상-렘브란트

 

 

 

플로라-티치아노

 

 

산 로마노 전투 중 제2막-우첼로

우첼로는 원근법의 발명가로 불린다.

산로마노전투는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1432년에 상업권을 두고 발발한

 피렌체와 시에나와의 전쟁으로 시에나 군을 격파한 기념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그림은 연작으로 총 3편인데 그 중 두번째 작품이다.

 

 

 

성모대관(산 마르코 제단화)-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보티첼리

팔라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으로 아테나라고도 부른다.

팔라스가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거머쥐고 있는 모습

 

이 그림은 메디치가의 정치적 승리의 상장성과 이성(팔라스)이 본능(켄타우로스)을

 제어한다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삭의 희생-카라바조

성서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아브라함과 비명을 지르며 아비의 손에 목이 눌려 있는 이삭의 표정이 사실적이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젠틸레스키

성경 속의 이야기로 이스라엘 여성 영웅 유디트가 거짓으로 투항한

앗시리아 장수 홀로 페르네스가 술에 취한 사이에 목을 내리치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작가의 아픈 경험을 담아 당시 남성 중심적이었던 사회에 대한 작가 젠틸레스키의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