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미켈란젤로광장

배흘림 2015. 5. 5. 01:32

 

 

 

피렌체를 한 눈에 담는 미켈란젤로 광장(언덕)

(2015. 3. 11)

 

피렌체 시내를 조망할 수 있고 특히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랐다.

물론 버스로 편하게 갔고 낮에 갔으니 야경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모조품으로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말로만 들었던 피렌체 두오모 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언덕 위에서 미리 만났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 붉은 빛의 도시라더니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다 보니 더욱 실감난다.

 

 

 

현재 피렌체 시청사로 사용 중인 씨뇨리아 광장의 베끼오궁

 

 

 

베끼오다리

하필이면 이 대목에서 크레인이 나의 눈과 카메라 뷰 파인더를 떡 하니 가로막았다.

 

베끼오다리는 아르노강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행자 전용이며 다리 위에 상점들이 있는 독특한 구조다.

 

베끼오다리는 처음에는 정육점들이 있었는데 1593년에 모두 철거하였고

그후 금은세공업자들이 들어왔고 지금은 보석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아뭏든 베끼오다리는 독특한 구조물이어서인지 아니면 보석상점들 때문인지,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운명적인 만남의 장소 때문인지

피렌체의 명소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우피치미술관 관람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베끼오다리를 담은 컷

 

단테가 9살때 이 다리에서 동갑내기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반해서

사랑의 감정을 가졌으며 9년 후인 18세에 베키오다리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딱 두 번의 만남에 플라토닉한 사랑의 감정을 가졌고

평생을 한 인간의 심연에 존재했다니......

 

그것도 불과 9살 때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니 조숙했던 걸까?

아니면 예술가들의 DNA는 역시 남다른 건지?

 

그리고 그 시절의 다리에는 정육점들이 있었다는데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어린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점들을 선선히 받아 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평범한 나와 위대한 단테와의 차이일 것이리라. 

 

 

 

"단테의 집"과 단테박물관

대 서사시 "신곡"을 남긴 단테의 생가

 

 

 

 

단테의 "신곡"이 유명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신곡을 안 읽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신곡을 꼭 읽어야겠다는 숙제를 안고 왔다.

 

 

 

 

  이 고리는 단테 생가 벽에 붙어 있는데 말을 매 놓을 때 사용하며

단테가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슴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테 성당

실내는 크지 않고 말 그대로 가족예배를 드릴 정도로 아담했다.

 

 

 

베아트리체 무덤

미인박명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통용되는지

베아트리체는 1290년 24세에 젊은 생을 마감했다.

 

무덤 앞 바구니에는 사랑의 편지가 가득했다.

베로나에 있다는 "줄리엣의 집"처럼 말이다.

 

 

 

 

단테는 1277년 12세에 젬마와 약혼을 했고 1292년에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곳에는 베아트리체의 무덤과 아내 젬마의 무덤이 있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라벤나에서 살다가

 끝내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병사해서 무덤도 라벤나에 있다.

 

베아트리체의 무덤이 이곳에 있게 된 연유는 잘 모르겠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찍느라 귓잔등으로 흘려버렸을 수도 있을테고......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첫만남

첫만남이 9살 때라고 했는데 이 그림에서는 한 39살은 돼 보인다.

 

아뭏든 말 한마디도 서로 건네지 못한 아홉살 소년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플라토닉 러브에 대해 점점 의문만 쌓고 돌아섰다.

 

 

 

 

 

 

 

르네상스를 이끈 천재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년~1564년) 생가

 

 "5백년 전의 사람인 미켈란젤로가 지금 피렌체로 돌아온데도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라는

가이드의 얘기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오랜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것을 하찮게 여겨 피맛골도 도시정비라는 명목하에 없애 버리

한옥마을도 허물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설쳤던

오모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기분이 나빴다.

 

아니 그런자가 다시 정치 일선에 복귀하려는 탐욕스러운 모습과

아직도 실체를 모르는 지지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한강르네상스라고?

르네상스의 뜻이 뭔지 제대로 알고 붙였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층 방에서 "모나리자"를 그렸다고 한다.

 

 

 

피렌체에서 유명한 것이 가죽제품과 티본스테이크라고 해서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는 피렌체 골목길의 밤풍경

 

 

 

 

토스카나지방의 특산품인 끼안띠와인을 곁들여 티본스테이크 한접시했서예~~

 

 

밤의 베끼오다리

삼각대없이 담은 사진으로 다리의 조명은 화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