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엄마 이젠 편히 쉬세요

배흘림 2008. 6. 23. 17:27

 

엄마, 이제 편히 쉬세요

 

 

장마철 잔뜩 흐린 날 엄마를 보러 용인으로 갑니다.

 

 

며칠전에 편지가 왔습니다.

발신지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총무팀

엄마의 유골을 용인천주교공원묘지 참사람묘역에 모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해서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는구나.

안도감 한편에 무언지 모를 허전함이 배어 나왔습니다.

 

 

20여년전 어느날부터 두 분은 명동성당엘 다니시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권유인 듯한데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종교 입문은 저에게는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사실 엄마의 성당행도 어떤 연유로 시작됐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그 때 농담으로 그랬습니다.

"두 양반같이 늙고 가진것 없는 분들은 장사에 보탬이 안돼서 신부님들도 싫어할텐데..."라구요.

아마 한가족처럼 때론 친구처럼 지내는 이모님의 간곡한 이끄심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두 분은 영세를 받으셨습니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라는 세례명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시신기증 문제를 꺼내셨습니다.

저와 아내는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진의를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도출한 결론은 이랬습니다.

 

장례의식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을 자식들에게서 덜어 주시려함이 분명했습니다. 

그 이유라면 반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부분도 없진 않지만 허나 결단코 그때문만은 아니라고 우기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지식도 풍부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하셨던 엄마에게 저는 져드리기로 했습니다.

아니 제가 편한 길을 찾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소 업무차 다니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행정실을 찾아가서 시신기증서류에 서명을 마쳤습니다.

 

 

엄마는 2001년 봄 팔순이 다 되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몸을 혹사시켜 폐결핵이라는 중병을 얻게 됩니다.

 

6개월 간의 긴 병원 생활 끝에 완치판정을 받고 집으로 오실때는 그나마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간혹 지난날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궤적을  더듬기도 하시면서 험난한 인생때문에

자식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점을 항상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심장과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서 일년에 한 번 정도는 병원생활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런 생활이 6년이 넘게 되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지쳐갔고

특히  형수님의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습니다.

 

옛말에 죽기전에 정을 떼려고 한다더니 아마 그런 의식을 치루셨나 봅니다.

 

 

신산한 삶을 사셨던 엄마는 생과 사의 팔자도 기구하십니다.

설날이 생일이고 추석이 제사날이니까요.

 살아 생전 생일 미역국 한 번 못 드셨지요.

 

친척분들은  번거롭게 제삿날 따로 챙기지 않게 하려고 추석에 돌아 가셨다고,

돌아 가시면서까지 자식들 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럴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사랑묘역에는 현재 10기의 납골묘가 조성되어 있고 기당 160구의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엄마는 9-5 묘역에 잠들고 계십니다.

 

 

1묘역에는 2004년에 돌아가시고 2005년에 모셔진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1묘역은 조성된지 3년이 지나 잡초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이 사진 찍고 풀을 뽑았습니다.

 

 

오는길 얘기 중에 "나는 70까지만 살아보고 건강하면 개평으로 10년 더 살아준다." 고 했더니

꽃보다 님 (이하 꽃님)왈

"부모님 장수하신거 보면 당신은 100년은 거뜬히 살겠다고 하더군요."

 

저의 반박- "아버지야 나라에서 10년씩이나 건강 관리해주고 잡곡밥으로 식단 조절해 줬으니 가능했고,

 엄마는 아버지 소재 대라고 전기침을 놨으니 그게다 장수의 비결이 아니겠냐구요."

 

유머 같쟎은 유머에 쓴웃음 지으며 차에 오릅니다.

 

 

이 사진은 꽃님이 시아버지 성함 찍다가 귀신으로 반영이 됐습니다.

그 것도 흰 옷 입고서

 

"아이, 무서라!"

 

 

엄마, 아버지 편히 쉬세요.

저희들 열심히 예쁘게 살테니 걱정 놓으시고요.

 

아버지는 그토록 평생 원했던 모든 이들이 평등과 평화로 사는 세상을 내세에서는 이루세요.

엄마도 고단했던 허리를 펴고 영면하십시오.

 

두 분 명복을 빕니다.

아들 정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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