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기림사

배흘림 2013. 8. 4. 16:12

 

신라 최초의 절이란 뜻을 가진 대가람 기림사(祇林寺)

(2013. 6. 5)

기림사 일주문

 

경주 동쪽 함월산에 있는 기림사는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로 불렀는데

선덕여왕 12년(643)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신라 최초의 절이라는 뜻으로 기림사로 바꿔 부르게 됐다.

 

기림사는 철종 13년(1862)에 큰 불이 나서 경내 113칸의 건물과 동종이 소실되는

참화를 겪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할까 대적광전만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림사가 불국사의 말사인데 예전에는 오히려 불국사를 말사로 둔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이는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토함산을 넘어야하는 교통도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고.......

 

 

 

기림사는 동해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자연스레 왜구들을 막는 일차 방어막 역할을 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수군과 승병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됐다고 한다.

 

 

사천왕문과 멋진 고목

이 곳에서 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우측은 사천왕문을 통하여 대적광전, 약사전, 응진전 등

기림사의 주요 문화재를 보러 가는 길이며 좌측은 유물전시관과 삼천불전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사천왕상

어차피 한바퀴 돌면 기림사 경내를 모두 둘러보게 되는데

우린 먼저 옛 절집들이 있는 사천왕문으로 갔다.

 

 

진남루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구조를 가진 정면이 긴 건물로 건립연대나 기능, 용도가 정확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수군과 승병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한다.

 

 

 

 

진남루의 창문(?)

 

 

 

진남루와 요사채를 경계하는 담장은 기와와 흙으로 쌓아 올렸더군요.

 

 

범종루

 

 

 

기림사의 역사 깊은 전각들이 한 눈에 보이는 지점이다.

 

 

응진전

 

 석조오백나한상을 모신 곳으로 선덕여왕 때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지만

조선 후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정하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맞배지붕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단아한 건물이다.

 

 

 

응진전 앞에 있는 신라말기 양식의 삼층석탑

 

 

대적광전 (보물 제 833호)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법당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불전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의 다포식 양식으로 겉모습은 절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힘차며

내부는 비교적 넓은 공간에 정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대적광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에 건립했으며 조선 인조 7년(1629)에 중수하였고 정조 17년(1793)에

경주부윤 김광묵이 사재로 불사를 일으키고 동종도 조성하였는데 철종 13년(1862)에 큰 불이 나서

대적광전을 제외한 경내 113칸의 건물과 동종이 소실되는 참화를 겪었고 1878년과 1905년에 보수하였다.

(안내 표지판 참조)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중 중앙의 비로자나불이다.

예불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멀리서 찍다보니 좌우에 있는 노사나불과 석가불은 담지 못했다.

 

기림사 소조비로자나 삼존불상은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적광전의 문살

 

 

약사전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기림사 약사전은 정면3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 다포양식의 건물로 문을 옆에 설치하지 않고 앞 쪽에 문을 낸 것이 독특하다.

 

 

 

 

 

 

좌측 : 진남루의 뒷면,   우측 : 응진전

 

 

 

 

 

 

향나무의 변형인 가이즈카향나무

 

 

관음전

 

 

 

 

 

삼성각

 

 

삼천불전

 

 

 

 

유물전시관

 

 

기림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 415호)

반가부좌 형태를 띤 보기 드문 반가상으로 조선초기불상이다.

 

 

 

 

 

 

매월당 영당

이 영당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1435~1493)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매월당 김시습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 3년에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경주 남산 용장사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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