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리마대성당(Catedral de Lima)과 산프란시스코수도원(Basilica y Convento de SanFrancisco)

배흘림 2018. 2. 17. 12:17



리마대성당에서 보고 느낀 상념

(2017.12. 26)


미라플로레스에서 리마대성당에 가려고  택시를 타고 마요르광장에서 내리려 했는데

기사 분이 혼잡한 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통행이 어렵다면서 내리라고 했다.

길이 막혀 있는 것도 보이고 거의 다 왔기에 흔쾌히 내렸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서야 인터넷 뉴스로 도로가 막힌 이유를 알게 됐다.

 이유인즉 현 페루 대통령이 인권침해와 부패혐의로 감옥에 수감 중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가석방해줬는데 가석방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도로를 통제했다고 한다.


가석방의 뒷배경에는 현 페루 대통령이 부패혐의로 탄핵이 확실시 되자

후지모리의 장녀가 이끌고 있는 민중권력당 의원 10여명을 포섭해

후지모리의 석방과 자신의 탄핵을 맞바꾸는 거래가 있었다고 한다.

참 어이없고 정치가 후진적인 국가의 전형이다.





산프란시스코수도원


후지모리는 일본계 2세로 남미국가에서 아시아인이 대통령이 된 특이한 사례다.

그런데 이 작자가 대통령 재임 중에 납치, 학살 등 인권탄압을 자행했고

부정축재, 횡령 등 부패혐의를 받자 2000년에 팩스 한 장 보내면서 사임했다.

팩스로 사임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이 인간은 모국이나 다름없는 일본으로 도망갔다.


결국 2007년에 체포돼 페루로 강제송환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고령과 건강악화라는 표면상 가석방 사유로 풀려났다.


희한한 것은 후지모리가 그토록 인권탄압과 부정을 저질러 임기도 채우지 못했는데도

후지모리의 딸과 아들은 애비의 후광 덕에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후지모리의 장녀 게이코 후지모리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위를 했지만 과반에는 미달했다.

페루는 과반 미달시 결선투표제를 두고 있는데 결선투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졌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가 대통령 재임 중에 이혼하는 바람에

졸지에 19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했다.



현재 게이코의 인기는 애비가 부정과 인권탄압을 일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애비가 한 패악질은 잊은 채 재임 중에 페루의 경제를 발전시켰다면서

후지모리 향수를 자극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표라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어딘가 아주 비슷한 역사를 가진 국가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를 표절한 듯하고 아니면 우리가 원조국가로서 한 수 지도해줬을 지도?






아뭏든 후지모리인지 모리배인지 썩을 놈 일가 때문에

남미여행의 첫 날 소중한 시간과 체력을 많이 허비하고 소진시켰다.

여기는 정치블로그가 아닌데......마음을 가다듬고 여행의 추억으로 돌아간다.


원래의 산프란시스코수도원은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유럽에서 책을 들여와 보관하던 일종의 도서관이었다.


입장료는 10 Sol (약 3달러)이며 개인적인 관람은 허용하지 않고

영어 또는 스페인어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한다.


아울러 사진촬영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이드에게 허락을 구하고 몇 장 담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사진 촬영은 포기하고 관람에만 몰두했다.

왜냐 가이드에게 잘 보여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려구...ㅎㅎ





수도원의 정면 파사드는 장식과 조각이 매우 화려하고 섬세하다

아울러 많은 세월이 흘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묘지인 카타콤에는 약 7만 명의 유골이 보관돼 있는데

섬뜩하면서도 유골이 안치된 모습이 하나의 조형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각 나라 마다 풍습과 문화가 다르다지만 이렇게 유골을 부분별로 모아

예술작품처럼 전시를 한 것은 내용을 몰라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부활을 믿는 가톨릭 신앙인지?  잉카문명의 일부분인지?






수도원의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위의 두 장의 사진 모두 구글에서 복사해 온 사진이다.


그리고 애초 도서관으로 시작했기에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었고

도서관의 장엄한 분위기에 카메라를 들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보관하고 있는 책들 중에는 현재 유럽에서 구할 수 없는 고서적도 있다고 하니

결론적으로 산프란시스코 수도원은 리마여행 중 꼭 가봐야할 곳 중 하나였다.





산프란시스코수도원을 나와 리마에서 꼭 보고 가야 할 곳 중

하나인 리마대성당(Catedral de Lima)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대성당은 출입이 봉쇄돼 있었는데 마침 유럽의 단체여행객들이

뒤 쪽문을 통해 들어갈 때 그들과 함께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뒤로 들어 갔으나 관리인이 나타나 성당 내부를 가로질러 원래의 입구로 가서

입장료(10Sol)를 내고 관람하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그리고는 대주교궁(20Sol)입장료까지 포함해서 30Sol 짜리를 사란다.

단호하게 "NO"하고 대성당 입장권만 구입했다.


행여나 입장권을 사지 않을까봐 쫓아 다니고

게다가 볼 것이 없다는 대주교궁 입장권까지 바가지 씌우려구?


사실 너네들 하는 짓 봐서는 안사고 싶었다 시바 ~~

자기들 몫은 안하면서 관광객들에게서 돈은 철저히 받아 내려는 사람들





2018년 1월에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이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리마에 방문하신다고 많은 성당들에 붙여져 있던 환영현수막






처음 막 들어가서는 규모만 크게 보였다.

그런데 구석구석 돌아보니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남미여행 중 남미 각국의 대표 성당들을 둘러본 감상은

남미 성당들이 유럽의 성당들보다 더욱 화려하게 보였다.

어찌보면 치장의 과잉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현란한 장식과 화려함에 위압감이 느껴졌다.

무신론자인 나마저 숙연해지고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위압감이 신성으로 포장되어 식민지를 장악하는 권력이 됐을 것이고

지배자들은 종교를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종교를 이용해 토착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고

궁극엔 정복자의 가치와 문화를 강요하는 그것이 진정한 신앙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용서하고 기뻐했을까?






리마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민지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1535년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직접 주춧돌을 놓았고

20년 후인 1555년에 완공되었으나 몇차례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보수했다





섬세한 조각의 목공예 장식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사제들과 성가대석까지 90개의 자리를

단 한 사람이 6년 동안의 작업 끝에 완성시켰다는데

종교적인 신념과 예술혼이 결합됐기에 이런 걸작이 탄생했을 것이다.






여기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정복자 피사로 방이다

피사로의 무덤은 교황이나 국왕에 버금가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피사로가 에스퍄냐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것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잉카의 입장에서 보면 피시로는 침략자이자 학살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를 이렇게 성인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고 추모를 하고 있다니?





어떤 리마 시민은 "그가 남미를 정복한 일과 리마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은 별개다."라고 했다니

그의 말대로라면 오늘날의 리마시가 존재하게 된 것에 더 감사한다는 말일게다.





당시 에스파냐인들은 남미를 침범할 때 문명의 우월성을 갖고 있어서

원주민들을 멸시했고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여겼다.


1억 명이 살고 있는 대륙을 자신들이 침략하고선 버젓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하는

승자의 몰염치는 그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얼핏보면 프레스코화처럼 보이지만 조각들을 하나하나 붙인 모자이크 작품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성모마리아가 매우 짙은 화장을 하고서

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인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얼굴에는 흐르는 눈물까지 묘사해 놓았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비의 성모


































성당 안 좌측에는 성물과 성화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뭐가 이쁘다고 박물관 한 쪽에 피사로와 관련물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또 있다.











지하에는 산프란시스코 수도원처럼 유골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관일까?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방문했기에 성탄절 분위기를 내는 예수탄생장면 장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