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만을 바라보는 정갈한 절집 백련사
(2012. 1.25)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절 중에 백련사란 이름을 가진 절이 가장 많을 거라 짐작되는데
그것은 불교와 연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하얀연꽃이 주는 순수함 때문일 겁니다.
백련사는 처음 이름은 만덕사로 신라말인 839년 무염국사가 창건했으며
1211년에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사로 바꿔 부르면서
삶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결사운동인 백련결사운동을 벌였습니다.
백련사는 고려무신정권이후 120년간 8명의 국사를 배출한 화려했던 영광도 있었으나
고려말 왕조의 힘이 떨어지자 왜구가 세 번이나 침략하여 노략질을 자행하여
해안가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절도 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초부터 강진에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세종때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행호대사가 절을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조선초기부터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을 받던 불교가
임진왜란이후 민간신앙으로 중흥하게 되자 중창됐습니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은 충주 소태면의 청룡사지를 오를 때처럼 상당한 된비알입니다.
아마 이처럼 강진만 구강포구를 한 눈에 내려다 보기 위해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배롱나무
만경루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글씨에 힘이 넘쳐 납니다.
백련사에는 일반절과 달리 사천왕문이 없고 만경루 아래를 통해 들어갑니다.
만경루 창으로 보는 배롱나무
만경루 창문으로 보는 강진만 구강포인데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만경루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었는데 현재는 템플스테이 수련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백련사를 둘러 보는데 강화 정수사가 생각나며 규모는 백련사가 조금 크지만
두 절 모두 정갈하고 서로 비슷한 분위기의 절집이라 여겨집니다.
대웅보전
1760년에 화재로 소실됐으며 1762년 새로 지었고 팔작다포집입니다.
현판은 원교 이원사의 글씨입니다.
범종각
명부전
명(冥 :어두울 명)이란 불교에서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그래서 명부란 저승세게를 뜻하며 명부전은 세상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지옥중생들까지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님을 모신 전각입니다.
항아리들이 번들번들 윤이 나네요.
응진당
응진이란 존경받을 만하다, 공경받을 만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응진당(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16나한상과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나한이란 수행을 통하녀 모든 허물이 사라지고 번뇌가 없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이 부처로 다시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 이 16분의 나한들에게
이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보호하고 불자들을 구제하라는 명령을 내리셔서
아직 이 세상에 현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백련사 사적비(보물 제 1396호)
원래 원묘국사의 비석이 있었은데 이수와 비신이 유실되었고 귀부만 남아 있었는데
이후 1681년 (숙종 7년)에 백련사사적비를 세우면서 남아있던 귀부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즉 백련사사적비는 고려시대 귀부에 17세기 후반의 이수와 비신을 가지고 있어서
1기의 비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양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수한 사례입니다.
백련사사적비에는 백련사 중수, 원묘국사 행적, 백련결사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 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우리가 백련사에 머무른 시간이 거의 한 시간 가량이었는데
이 녀석은 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얼음이었으니 이 녀석도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입니다.
주 소 : 전남 깅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전 화 : 061)432-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