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전형 도동서원
(2011. 7. 3)
도동서원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에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으로
영주시 풍기읍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과 함께
5대 서원 중 하나로 고종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입구에 도착하면 수령이 4백년된 은행나무가 낙동강을 굽어보며 도동서원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우뚝 버티고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 건립을 기념하기 위해 심어서 "김굉필나무"라 이름 지었답니다.
높이 25m, 둘레는 8.7m로 은행나무치고는 매우 우람해 보여 가을의 은행잎이 무성할 때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김굉필 선생은 호가 한훤당인데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으며 무오사화때는 김종직의 문도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는데 그때 조광조에게 성리학을 전수하였고
김굉필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정암 조광조는 중종때 사회변혁을 이끌며 항상
김굉필 선생의 가르침을 정신적 중심에 두고 행동했었다고 합니다.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된지 2년 후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된 김굉필 선생은 갑자사화(1504년)가 일어나자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이후 광해군 2년(1610년)에 대간과 성균관, 유생들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상소하여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5현으로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에 종사(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되었습니다.
수월루는 아래에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외삼문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수월루의 누각은 여유공간으로 유생들의 휴식이나 강독공간으로 사용됐다고 하며
누각에서 바라보면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 일대의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환주문
환주문 처마에는 연꽃 모양의 나무조각이 있고, 아래에는 앙증맞은 돌의 조각이 있습니다.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당인데 강학 공간으로 1m 50cm의 높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주심포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앞면은 개방되어 있고 좌우에 방이 있습니다.
기단의 높이가 무려 1m 50cm인데 그래서인지 건물이 더 기품있고 위엄을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기단의 갑석 바로 아랫단 면석 사이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정당의 바닥인데 상당히 넓죠?
현존하는 국내 서원의 강당 중에서는 가장 넓다고 합니다.
담장은 흙으로 쌓았는데 아름다워서 토담으로는 최초로 보물로 지정됐는데
강당과 담장 그리고 사당이 보물 제 350호로 지정됐다고합니다.
담장을 좀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에서 옆모습을 담았어요.
자연석을 정렬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기와를 5단으로 놓고는 그 사이에 진흙을 쌓고
수막새를 엇갈리게 끼워 넣었는데 암기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와 장식효과를 내기 위함입니다.
서재(西齋) - 유생이 거처하고 공부하는 서쪽의 집
사당으로 오르는 내삼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 으로 김굉필 선생과 외증손인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셔 두었습니다.
배롱나무
다람재 정상의 정자에 오르면 낙동강의 도도한 물줄기와 강건너 고령땅, 도동서원이 한 폭의 동양화같다고해서
큰 기대를 하고 올랐는데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그 4대강 공사때문인지 누런 황토물만 반기더이다.
다람재 정상에서 보니 왜 도동서원이 배산임수형의 명당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주 소 :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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