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늘이 열린 하늘재
(2011. 7. 13)
하늘재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를 넘어 고난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하늘재를 넘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왕조의 부활을 꿈꾸었지만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의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로 서로 헤어지게 되었고 나라가 망해 떠돌이가 된 오누이의 생이별한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미륵리에 미륵불을, 덕주사지에 마애불을 세워 마주보게 했다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오누이불상은 서로 마주 본 채 그렇게 서 있습니다.
경북 문경시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하늘재, 지릅재, 닷돈재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아사달 3년(156년)에 죽령과 조령사이의 가장 낮은 (해발 525m) 이 곳에 길을 개척했는데 계립령이라고도 불렀답니다.
죽령은 하늘재보다 2년 늦게 길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 하늘재를 넘으면 충주에 이르고 남한강의 수로를 이용하면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어서 신라와 고구려, 백제
삼국 모두가 중요시한 군사적 요충지였고 또한 물류의 운송에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조 태종 14년(1414년) 조령로(현,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고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한 세월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하늘재를 답사했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5,6년 전 백두대간 종주길에 열심이었던 기억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늘재~포암산~대미산~여우목 구간과 탄항산~마패봉 구간을 산행할때 하늘재를 산행 길머리로 했었습니다.
백두대간길은 물을 건너지 아니하고 산의 능선만을 오르내리는데 재나 령은
백두대간길을 가로지르므로 길은 길이지만 서로 쓰임새가 다른 길이죠.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백두대간 하늘재" 표석이 있는데
전에 백두대간을 걸을때는 못 봤던거라 자세히보니 2009년에 건립해 놓았군요.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잠시 그쳐 물을 한껏 머금은 이파리들이 싱그러움을 자랑합니다.
대단한 관찰자들이 명명한 연아나무(좌)와 친구나무(우)입니다.
국민여동생 김연아 선수가 취하는 우아한 "비엘만 스파이럴"동작과 흡사해서 이름 붙였다는데 그럴 듯 합니다.
눈 맛과 걷는 맛을 충분히 느낀 아름다운 길 하늘재는 미륵리사지와 연계해서 답사를 하면 가족여행으로 좋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경방향이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는데 미륵리사지에서 왕복을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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