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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스케치

배흘림 2008. 2. 6. 18:53

            7,80년대에는 서울에 달동네가 참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난곡, 봉천동, 하월곡동, 금호동, 이문동, 목동, 미아리, 흑석동, 노량진 본동, 성북동, 구산동 등

이렇게 꼽다보니 저도 달동네와 인연이 깊네요.

신혼시절 미아삼거리 월세 생활 4개월, 그 후 신이문역 부근 3년, 지금 사는 목동도 예전에는 달동네였다죠.

 

인디영화 "우리학교"를 보기위해 1시간 30분 걸리는 대학로 하이퍼텍나다까지 가야합니다.

2시간 20분 짜리 영화를 보기 위해 왕복 3시간과 기타 등등 시간 포함 4시간이 아까워서

영화보고  몇 안남은 달동네인 이화동도 스케치하는 등 스케줄을 짜고 아들을 꼬십니다.

시간이 남으면 삼청동에도 가 보려 합니다.

 

아들넘 좋아하는 디마떼오의 피자와 스파게티로 유혹하니 금방 넘어 옵니다.

버스를 타려하니 이녀석 눈치가 이상합니다.

버스를 타고 곧바로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버스카드에 잔액이 부족합니다.

항상 잔액의 여유가 있을때 충전하는 준비성을 기르라고 가르쳤는데 실행을 안 한 겁니다.

또 버스카드 충전비를 준지 얼마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이 녀석이 삥땅한 심증이 갑니다.

그래 약간의 감정의 골을 가지고 향한 대학로입니다.

            

디마떼오는 전보다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본토 피자를 맛 보기 위한 손님이 많은가 봅니다.

우리 사회의 화두 양극화는 어디든지 존재하는가 봅니다.

 

영화 "우리학교" 를 관람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사실에 충실하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북한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재일동포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남한은 조총련을 모두 간첩 집단으로 몰아 세우고 방문 절차도 까다롭게 했으니 

고향이 남쪽이래도  북쪽에 친밀감을 갖는것은 인지상정아닐까요?

 

그리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멀리 돌아서가는 그 들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평범하고 쉬이 살 수 있을텐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습작- 다른 사람이 촬영한 같은 지점에서 찍었건만 18mm 렌즈로는 화각이 부족합니다

옆의 벽과 내리막 이미지를 나타내려면 12mm 렌즈가 필요합니다.

   역시 지름신이 강림하실때가 온 것 같습니다. 100mm 매크로도 필요합니다.

 

 

 

                                   20대와 50대 두 여인의 교차되는 뒷 모습을 담으려 했는데 아쉽습니다.

 

 사실 제게 이곳은 매우 낯익은 지역입니다. 90년대 초반 저 아래에 거래처(필림 제판집)가 있었는데

주차장이 없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일단 작업하면 심야에 일이 끝나고 무거운 필림을 구로동까지

운반해야 하기에 이 위에까지 차를 자져가서 주차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17,8년이 지났지만 이 곳은 크게 변한 건 없습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골목이 좁아서 작은 마을버스가 다녔는데 이제는 그마저 안다녀서 주민들은

두 다리에만 의존해야 할 것 같은데 노인들은 어떻게 다니실지 걱정이 됩니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사람들의 신산한 삶

고행에 가까운 삶이 있는곳에 비싼 점심 먹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운 하루였습니다

 

아가는 길을 찍고 있는데 아내가 빨리 뒤쪽에 지게지고 언덕을 오르시는 노인을 담아보라고 권합니다.

뒤 돌아보니 작품이 될 만해서 담긴 하는데 지게를 지신 노인의 삶의 무게가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얼른 찍고 이 자릴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더 심해지는 양극화, 도시 빈민문제, 피폐하고 고령화 되는 농촌문제 답답합니다.

어떤이들은 대통령 한 명 잘 뽑으면 세상이 금새 좋아지리라 여깁니다.

생각이 냄비 같습니다.

세상이 그토록 단순 명료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우리학교"를 하이퍼텍나다에서 관람하기전 점심 먹으러 이원승씨가

    운영하는 디마떼오에 가서 피자를 시켜놓고 한 컷

감정의 앙금으로 약간 상기!

 

 

                                  오늘은 이원승씨가 안 보인다- 종업원이 이탈리아에 한 달간 출장이라고 합니다.

 

 

                                        낙산 정상에서 바라본 삼각산입니다. 저멀리 인수와 백운대도 보입니다.

 

 

 

    잘 정비된 낙산 성곽과 낙산공원, 오른쪽으로는 문화시설을 빙자한 유흥가,

 왼쪽으로는 달동네 부적절한 조합입니다..

사실 80년대 대학로의 초창기 모습에서 완전 변질된 요즘의 대학로를 보면 역겹기까지 합니다.

젊음과 낭만을 빙자한 퇴폐문화!

그시절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공연되던 연극들은 그 암울했던 독재 정권 시기, 노동자, 도시빈민 문제 등을

주제로한 민중문화운동이 많았고 연극쟁이들이 요즘처럼 길에서 호객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내용은 없이 저속한 내용의 저질 블랙 코메디만 양산하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삶의 질곡으로부터 위안 받으라고 그려놓은 계단꽃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면 좋으련만 하고 혼자 되뇌어 봅니다.

 

 

                                          골목 벽화 귀엽습니다. 회색의 무게에 눌린 이방인에게 약간의 위안이 됩니다.

 

 

                                       이원승씨가 이탈리아 출장이라더니 여기에 와 계시는군요.

 

 

                                   7,80년대 산업발전시기에 우리 사회를 지켜주고 경제를 이끈 숨은 주역

                        누님, 형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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