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도 제 2의 고향이라고 감회가 새롭던 동대문운동장 터
(2012. 10. 9)
1971년에 부모님 따라 상경해서 1991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살았던 동네에 갔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쌍림동, 광희동, 장충동, 퇴계로 5가 등으로 전세집을 전전하며 살았었는데
그 당시에는 전세계약의 기간이 보장되지 않던 시기라 6개월마다 이삿짐을 싼 적도 있었다.
1991년 결혼과 동시에 떠나온 동네인데 서울에 살면서도 동대문운동장 부근에
갈 일이 없어 오랫만에 찾았는데 그래도 제 2의 고향이랍시고 애틋함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살고 계시는 노인분들이 알아 보시고 반갑게 맞아 주시는데 애잔함도 있고.......
동대문운동장은 헐리고 그 자리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과 동대문역사관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철딱서니 없는 오세훈이의 뻘짓으로 남을
디자인뭔가라는 조성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간혹 관광 온 외국인들도 보이는데 그들에게 보여줄 것은 거의 없었다.
이간수문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내에는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와 중요경기자료,
그리고 몇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것들만 있을 뿐이었다.
1970년대 당시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서는 고등학교 야구가 가장 인기 있었는데
당일 마지막 경기의 7회가 되면 퇴장문을 열어 놓고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었다.
야구를 좋아해도 자주 관람할 형편이 되지 못한 우리는 그제서야 들어가 관람하곤 했었는데
1974년 봉황대기고교야구대회에서 대구상고와 재일교포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3루석에서 관람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장효조선수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이 경기는 입장료 내고 정식으로 입장해서 준결승 두경기를 다 봤던 날이다.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역사관은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건립공사 중 땅 속에 묻혀있다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간수문 모형
치성
재활용품인 페트병으로 만든 해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나와 청계천과 평화시장, 광장시장, 중부시장의 밖을 둘러봤다.
사대강과 맥이 닿아 있는 청게천, 당시 청게천복원공사에 열광했던 이들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우리의 전통인 자연미는 모두 어디에 갖다 버리고 인공하천을 자연친화적 생태하천이라고 우길 수 있는지
그 뻔뻔스러운 작태가 한심하고 그를 우상화시킨 쓰레기언론과 추종자들은 결과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전태일 열사 동상
우리는 아직도 전태일 열사에게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 시절에는 온라인서점이 없을 때였고 유일하게 청계천에서만 책을 할인해줬고
대형서점이래야 교보도 생기기 전, 종로서적만 종로2가에 있을 때였다.
청계천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우리는 청계천 서점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동아전과와 표준전과, 영어, 수학 등의 참고서를 사곤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몇군데의 중고헌책방들이 남아 있어서 명맥을 유지하는게 반갑더군요.
상전벽해라 했던가?
청계천에 환전소가 생길 줄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예전 옷가게 자리에 들어앉은 화장품 매장
청계천 벽에서 나름 감성을 찾고 싶어 담은 사진인데 여~엉 아니올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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