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찾아서
(2012. 4. 14)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11일에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고 4월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등이 임명되었다.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내각을 개편하였다.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해(1919)에서부터, 항저우[杭州, 1932]~
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림 인용/참고-네이버 백과사전
초기에는 재정의 대부분을 재미교포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유지되었으며,
뒤에는 장제스(蔣介石)의 원조금으로 충당되었다.
초기에는 미국과의 외교에 중점을 두었으나 종전기에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임시정부청사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데 꽃님이 당당하게 몇 장 담아왔다.
장하다 꽃님
사실 이런 기념관 등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럭 허용해야 한다.
귀중한 문화재라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허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