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산수절경을 감상하는 충주호유람선
(2011. 8. 20)
장회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을 탄 적이 있었는데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벌써 8년 전입니다.
초등학생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고 30대와 40대였던 우리 부부는 40대와 50대가 되었으니
그 누가 옛날 "세월은 충주호의 물살만큼 빠르다"고 했던가요?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간 충주여행 이틀째에 평소 거동이 불편하시기에 조금 멀더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유람선으로 결정했는데 배에서 내리면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금년 여름에 비가 많이 온 덕에 충주호의 수위가 높아 더욱 더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이 많이 빠지면 붉은 흙이 드러나서 천혜의 산수절경의 맛이 조금 덜하거든요.
숙소인 충주 봉황자연휴양림에서 네비로 장회나루를 검색하니 38번 국도로 제천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랍니다.
명색이 자타공인 살아 숨쉬는 네비인데 제 예상과 다른 길을 안내하는데 절대 따를 수 없지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은 수안보방향에서 36번 국도를 이용, 충주호를 따라가는 드라이브코스였거든요.
아뭏든 충주호와 월악산을 보며 숨도 크게 들여 마시고 녹색에 안구정화도 하며 장회나루에 도착했습니다.
금년 8월 5일부터 유람선의 성인요금이 1만원에서 1만 2천원으로 인상됐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2천원을 할인해 준다기에 인터넷으로 예약, 입금을 하고 왔습니다.
원래 11시 10분 배를 예약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탔어요.
자 저와 함께 유람선에 같이 타실 준비되셨나요?
그럼 천혜의 비경을 감상해 보시죠.
옥순봉 (玉荀峰))
「제천 옥순봉(堤川 玉荀峰)」은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옥순봉은 본래 제천(당시 청풍) 땅인데 이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였던
퇴계이황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면서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데서 비롯되었고,
인근의 구담봉과 함께 여러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이다.-문화재청 자료
200m 높이의 거대하고 화려한 수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구담봉(龜潭峰)
「단양 구담봉(丹陽 龜潭峰)」은 절벽 위의 바위가 거북이를 닮아 구담봉(龜潭峰)이라 한다고 전한다.
구담봉 장회나루 쪽으로는 퇴계 선생을 사모하던 기녀 두향의 묘가 있으며,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주지번이 이곳에 낙향하여 칡넝쿨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연결하여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등 이야기가 많은 명승지이다.
구담봉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이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에 감싸여 있어 예로부터 이황, 이이, 김만중 등 수 많은 학자와 시인묵객이
그 절경을 극찬한 바 있으며, 지금도 충주호 수상관광의 최절경지로 꼽힌다.-문화재청 자료
저는 여태껏 구담봉은 봉우리가 아홉개여서 구담봉이라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구"가 아홉 "九" 가 아니라 거북"龜" 였군요.
유람선은 구담봉 옆을 빠져나가 제비봉 방향으로 갑니다.
단양팔경은 도담삼봉, 석문,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구담봉, 옥순봉 등 단양의 여덟가지 절경을 일컫는데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면 단양팔경 중 옥순봉과 구담봉을 볼 수 있습니다.
용정에 있는 일송정이 갑자기 떠오르는 까닭은?
유람선에서 선장이 거북바위를 보라고하는데 저만 못 찾는지 아무리봐도 없더군요.
그런데 이 각도에서 보니 거북바위을 찾지 못할 수 밖에요.
배가 조금 더 나가자 바로 구담봉으로 불리워지게 된 거북 형상의 바위가 보입디다.
운암대
제비봉
바위능선이 충주호 쪽으로 마치 제비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몇 년 전 겨울에 제비봉 등산갔을때 충주호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신선봉
강선대
퇴계 이황 선생을 사모했던 두향의 묘
단성면 장회리에는 단양의 군수였던 퇴계 이황 선생과 단양군의 관기였던 두향의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의 사랑 이야기 」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의 친형인 대헌공이 직속상관인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해 오자,
형제가 직속상하관계로 있으면 나라 일에 공평을 기할 수 없을뿐 아니라,
세인들로부터 오해를 받게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퇴계는 사표를 제출했다.
퇴계의 청렴결백한 성품을 알게된 조정에서는 그를 풍기군수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퇴계와 두향은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한편 퇴계가 떠난 후 두향은 시중잡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단 10개월 동안이나마
모시던 어른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고 기적에서 물러 날 것을 결심하고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사연을 말하여 허락을 받아 면천되었다.
그 후 두향은 오로지 퇴계를 그리워하면서 퇴계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외롭게 살았다.
두향의 마음이야 오매불망 퇴계를 잊을 수 없었으며,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간접적으로 인편을 보내 문안을 여쭙곤 하였다.
헤어진지 어언 4년이 되는 봄날 인편에 퇴계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두향에게 보내주었다.
黃卷中間對聖賢(황군중간대성현) -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속식) -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햑요금탄절현) -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퇴계의 나이 52세(1552)되는 해의 작품이다.
이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분명히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두향은 이 시 한 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다.
퇴계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선생은 두향을 보듯 매화를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까지 했다.
퇴계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선생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선생의 시 한 편이다.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한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채운봉
현학봉
금수산 자락의 현학봉은 마치 한마리의 학이 날아 오르는 형상을 했다하여 이름 붙여졌답니다.
부처바위
노들봉
옥순대교
저 푸른 초원과 호수 곁에 그림같은 집?
낚시하는 강태공
금년 여름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상류에서 쓸려온 쓰레기들이 "옥의 티"였습니다.
쓰레기를 고기 잡듯이 그물에 몰아넣더군요.
그리고 보트로 그물을 끌어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유람선 선착장
주 소 : 충북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90-3
전 화 : 043) 422-1188
유람선 소요 시간 : 약 1시간
유람선 요금 : 성인 12,000원, 소인 6,000원(13세 미만)
*인터넷 예약후 입금시 성인 요금 2,000원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