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쉬역과 체르마트 다운타운
타쉬역과 체르마트 성당 주변 스케치
(2018. 7. 28)
체르마트는 환경보호를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전기자동차만 운행을 허가하고 있어서 체르마트로 오갈 때는
차를 타쉬역 주차장에 두고 셔틀 트레인을 이용했다.
셔틀 트레인 티켓을 구입하려는데 직원이 와서 친절하게 도와줬다.
셔틀 트레인 왕복요금은 16프랑(18,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우리는 체르마트 여행자 안내소에서
2days pass (195프랑 / 22만원)를 구입했다.
그런데 day pass에는 셔틀 트레인 요금까지 포함돼 있는데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4명의 요금 72,000원을 버린 셈이니 무척 아까웠다.
타쉬 기차역 플랫폼
체르마트-타쉬간을 오가는 셔틀트레인
호랑이와 비슷한 얼굴과 무늬를 가졌고 눈이 특이한 개를 만났다.
개주인 노인네 부부는 이름이 '장고'인 개와 가벼운 트레킹을 할 거라고 했다.
기차 내부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차창 밖에는 녹 녹은 물이 계곡으로 흐는데 작은 협곡도 지났다.
체르마트역에 도착하니 각국 나라말로 환영인사가 적혀있었고
'환영합니다'라는 한글도 보여 반가웠다.
체르마트역 바로 옆의 여행안내소에서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정상부의 날씨가 몇 시부터 어떻게 변할 거라고
알려 주면서 그럴 경우에 맞는 코스를 적절히 알려줬다.
예를들면 우리가 갔을 때가 10시경이었는데 1시부터 비 예보가 있으니
짧은 코스를 다녀 오라는 안내를 하는데 역시 스위스라는 게 실감났다.
체르마트는 친환경마을이라 내연기관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는데
체르마트 역에서 내리니 특이한 모양의 전기자동차들이 보였다.
전기자동차들은 호텔에서 손님들을 위해 픽업서비스를 하는 차들이고
뒤에 보이는 'COOP'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마트 체인으로
어느 도시에 가나 COOP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린 아침에 산에 오르기 전에 COOP에 들러 도시락을 구입했고
저녁에도 COOP에 들러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갔다.
체르마트에서는 택시도 전기자동차였슴은 물론이고
하물며 화물차까지 전기자동차였다.
그런데 앙증맞게 생긴 경운기는 시동이 꺼져 있어서
알 수 없는데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야 궁금증이 생겼다.
경운기 짐칸에는 할머니와 8개월된 강아지가 타고 있었는데.
이 할머니한테 전기인지? 디젤인지? 물어볼 걸 그랬다.
개를 키우는 유럽인들의 공통점은 자기 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거나 사진을 찍으면 무척 좋아했다.
이 집은 돌을 납작하게 잘라 지붕을 얹었는데 내구성이 좋다고 한다.
지금도 체르마트 여러 곳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던데
전통양식에서 벗어난 형태의 건물의 신축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자거리를 걷다가 길거리 모자가게에서 사고싶은 모자를 발견했다.
꽃님도 잘 어울린다며 적극 추천하기에 디스카운트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정색을 하며 자기 제품에 하자가 있냐고 물었다.
순간 사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유머였다며 둘러대고 가게를 떠났다.
해외여행에서 물건을 살 때는 일단 깍아달라는 말을 던지는 것이 보통인데
할인을 해주기 싫으면 그냥 '노'라고 하면 될 것을 제품하자까지 운운하며
정색하며 손님을 대하는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인 상인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당시의 일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파는 제품도 정확하고 정직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동양여행자들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체르마트는 해발 고도 1620m에 위치해 있다.
성당
유럽은 모든 도시의 중심이 성당이듯이 체르마트 역시 성당에서부터
기차역까지 다운타운과 여행자거리가 형성돼 있어서 각국 여행자들과
레스토랑, 기념품점, 스위스의 자랑인 고가시계 판매점들이 즐비했다.
성당 옆 마모트분수
성당 뒤쪽으로는 마테호른을 등정하다가
목숨을 잃은 등반가들과 가이드들의 묘지가 조성돼 있다.
체르마트는 지금도 깊은 산골인데 예전에는 얼마나 오지였을지 짐작이 간다.
지금이야 번창한 관광산업 덕분에 세계적인 관광지 마을이 됐지만
예전에 살던 주민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어렵던 시절에 마침 유럽의 알피니즘이 태동하게 됐고
많은 탐험가들과 등반가들이 마테호른으로 가기 위한 길목인
체르마트로 몰려 왔는데 등반에 필요한 인프라와 안내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등산로도 개척하고 외지인들의 안내와 포터를 맡게 됐다.
그렇게 가이드와 포터로 나선 주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체르마트는 그 사람들의 헌신 덕분에 현재의 체르마트가
존재함에 감사하며 그들의 묘을 조성하고 그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