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 중 으뜸이라는 죽서루
관동제일루 죽서루
(2014. 8. 23)
삼척시내를 흐르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있는 보물 제 213호 죽서루는
오랜 역사를 지녔고 웅장하여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누각이다.
죽서루의 정문
사진 속의 처자는 혼자서 택시타고 왔다는데 인증샷 한 장 찍고
죽서루에 올라 갔다가 내려 오더니 용문바위도 안보고 서슴없이 퇴장을 하였다.
그래서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보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알려 줬다.
갔을까? 아마 더운 날에 걷기 싫어 안 갔을 듯.......
죽서루는 2003년 6월부터 무료관람을 시작해서 현재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죽서루는 조선시대에 일종의 관아시설로 활용된 누각으로
지방에 파견된 중앙 관리들이 묵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공공시설로서 접대와 향연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사대부들과 시인 묵객들의 정신 수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숙종(1710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초서로 쓴 죽서루 현판
관동제일루 : 역시 삼척부사였던 이성조 글씨
2칸으로된 북측면
죽서루는 북측면은 2칸이고 남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어 양 측면의 칸 수가 다른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3칸의 남측면
해선유희지소 (조선 헌종, 1837) : 삼척부사 이규헌
제일계정 (조선 헌종) : 삼척부사 허목
작자미상
용문바위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죽은 뒤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 오십천에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호국용이 오십천을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가면서 구명이 생겼다고 해서 용문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성혈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로 조선시대에도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어
득남의 기원처였으며 칠월 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 일곱구멍에 좁쌀를 담고
치성을 드린 후 좁살을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이 곳 성혈은 용문바위 위에 직경 3~4cm의 크기로 10개가 만들어져 있다.
반대편에서 본 용문바위
송강 청철 가사의 터 표석
삼척치소의 근원지임을 알려주는 삼척읍성지 표석이 있는 이곳에는 대나무가 시원함을 선사해줬다.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삼척 편에 보면 죽서루는
경내에서 보는 것보다 오십천 건너편에서 보는 것이 훨씬 멋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 죽서루에 가면 항상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보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