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경주 남산

배흘림 2013. 7. 23. 14:36

 


문화재를 감상하며 등산하는 경주 남산

(2013. 6. 4)

 

십수년 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경주 남산의 산행을 했다.

경주 인근에 사는 분들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겠지만 수도권에서의

경주는 역마살이 낀 사람에게조차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경주는 1993년 경부터 아마 서른 번 이상 방문했을텐데 딱 한 번의 가족여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업무적 출장길이어서 문화재의 위치만 확인하고 오는 수준이었다.



 

 

 

산행길에 뜻하지 않게 삼릉에 내려앉은 안개와 소나무 숲의

몽환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행운도 얻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은 남산의 여러 등산로 중 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는

삼릉에서 시작하여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골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삼릉

배리(배동)에 있어서 배리삼릉이라고도하며 8대 아달라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세 무덤이 나란히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나 8대 아달라왕과 나머지 두 왕의 시대는

무려 7백년의 시차가 있고 신라 초기에는 대형봉분을 쓰지 않았기에

무덤의 주인이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조금 오르니 등산로 바로 옆에는 머리 부분이 없는 좌상,

탑의 지붕돌과 일부분 등을 모아 놓아서 이 곳이 경주 남산임을 실감케 했다.



 

 

 

남산의 이정표에는 두가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일반등산가들은 흰색글씨를,

문화재답사가 주목적인 이들은 황색글씨를 따라서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표지판에는 널리 알려진 주요 문화재만 표시되어 있어서

하산 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개는 지나쳤슴을 알았는데

문화재를 샅샅이 보려면 지도를 따로 준비해야겠다.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머리를 잃었으며 지금의 위치도 원래의 위치가 아니라고 한다.

 

이 석불은 30년 전까지만해도 앞면이 땅에 묻혀 있었기에 선명한 옷주름이 잘 보존되어 있으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겠으며 부처님의 왼쪽 겨드랑이와 가슴에 있는 가사와 군의를

매듭지은 수실 조각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사진 우측 상단)



 

 

 

조금 오르니 예전에 기도처로 사용하던 터로 보이는 곳에서는

초로의 등산객이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계셨다.



 

 

삼릉곡 선각육존불 (선각여래입상삼존불·좌상삼존불)

선으로만 표현되어 있고 손상이 많아서 조각상이라기보다는

흑백으로 된 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각여래입상삼존불

두 개의 바위 중 우측에 있으며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선각여래좌상삼존불

왼쪽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우측의 입상삼존불보다 많이 훼손되었고

특히 왼쪽의 협시보살의 모습은 구별이 어려웠다.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광배의 뒷모습



 

 

석조여래좌상 뒤에 있는 기도처



 

 

상선암



 

 

 

금오산 정상 조금 못 간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주시내 전경



 

 

 



 

 

전망대 옆에는 엽서와 우체통이 있기에 집에 있는 아들한테 엽서를 보내면서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금송정

금송정은 금오산에 있던 정자였는데 경덕왕 때

음악가 옥보고가 가야금을 타며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의 주변은 암석이 균열 및 파손되어 낙석사고가 우려돼

2013년 12월 31일까지 탐방로를 우회시키고 공사 중이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불상의 높이는 5.2m로 불상 부분만 트리밍하고 확대해봤다.

머리부분은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으나 어깨 아래는 선각이다.



 

 

 

경주 남산의 금오산은 해발 468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멋진 암릉미도 갖추고 있었다.



 

 

등산로에 있는 무덤



 

 

 

드디어 468m 금오산 정상에 섰다.

경주 남산에는 금오산과 고위산(495m) 등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용장사터 삼층석탑

탑의 높이는 4.5m에 불과하나 남산의 해발 400m 높이의 암반 위에 있어서

위에서 볼 때나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모두 상당한 높이와 규모로 느껴졌다.



 

 

 

1층의 높이가 기단의 높이와 엇비슷할 정도로 높고

2층과 3층의 높이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용장사터 마애여래좌상

얼굴의 선이 굵고 준수한 용모의 비교적 젊은 청년 같은 인상이다.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우리나라 유일의 삼륜대좌불로 넓적한 바위 위에 작은 원반석과 큰 원반석을

옥개석 쌓듯이 3층까지 올리고 그 위에 여래좌상을 모셨는데 현재 머리는 없다.

 

신라 경덕왕 때 용장사에는 많은 책을 저술하고 학문이 깊은 대현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대현스님이 염불을 하며 돌미륵상을 돌면 미륵상도

스님을 따라 머리를 돌렸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고 한다.



 

 

 

바위 두 개가 서로 의지하며 사람인(人) 자세로 넘어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용장사지 삼층석탑

 

이 탑이 보이는 지점에서 창원에서 아내와 처형들을 모시고 온 분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은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이었다.



 

 

설잠교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단종 3년에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용장사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김시습의 법호가 설잠이라 다리를 놓을 때

김시습을 기려 다리를 설잠교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망월사

절 중에 망월사란 이름이 참 많은 듯하다.



 

 

 

용장골로 하산하였는데 배리삼존불을 보지 못함이 너무 아쉬워서 배리삼존불을

찾다가 우연히 망월사란 절에 들렀는데 아담하고 정갈한 절집이었다.



 

 

 



 

배리 삼존석불

그토록 찾았던 배리삼존불은 망월사 바로 우측의 매점과 화장실 조금 위에 있었다.



 

 

 

배리삼존불은 부근에 흩어져 누워 있는 불상들을 1923년에 바로 세웠으며

20여년 전에 보호각을 세울 때까지는 노천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 삼존불은 모두 입체불로 본존불은 어깨와 머리를 잇는 작은 광배만 가지고 있고,

우협시보살은 장신구가 화려하고 좌협시보살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뒷모습이 매우 재미 있는데 본존불은 만화영화에 나옴직하고

우협시보살의 뒷모습은 18세기 유럽 귀족 처녀의 행차때 의상 같고

좌협시보살의 뒷모습은 처녀의 엄마 같아서 혼자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