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원
대한민국 동물복지농장 1호, 하동 청솔원
(2012. 8. 31)
친구 녀석이 뭔가를 털어 버리고 싶었는지 느닷없이 도보여행을 제안해 왔다.
오로지 두 발로 걸으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출구를 찾아 떠나자기에 함께 했다.
어느덧 50대 초반, 많이 살아온 것 같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우리들 대부분의 어깨 위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앞으로의 고단함을 예고한다.
여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방사양계장인 청솔원만 꼭 들러야 할 행선지였을 뿐
시간과 공간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보고 느끼며 걷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하동과 인접한 남해군을 여행지로 정하고 친구가 가고 싶어하는 청솔원에 첫 날 들렸다.
연이어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날은 맑고 길가 감나무의 감이 익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날 남해 평산리에 갔는데 평산리가 조금 더 따뜻한지 이보다 조금 더 익어 있었다.
마을 표지석을 고인 돌이 질박하게 멋스럽다.
야트막한 산 정상에 있는 기암과 나무에서 정기를 받으며 걷고 또 걷고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듯한 우물
두 번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다행스럽게도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삼복더위는 아니지만 따가운 햇살 아래서 걷기를 4시간여 대략 18~19Km를 걸은데다
마지막 구간이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이라 지친 상태쯤에 반갑게 청솔원 입구가 나타났다.
청솔원의 입구는 제주도가 연상될만큼 낮은 돌담이 예쁘고 이채로워서 여쭤보니
이 지역에 돌이 많아 청솔원의 정진후 대표가 틈틈이 직접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한다.
방문 전에 약속을 잡는 것이 도리일텐데 사전통보도 없이
등산복 차림의 50대 중년 사내 두 명이 불쑥 들이 닥치니
정진후 대표는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하동터미널에서부터
걸어 왔다는데 어느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진후 대표는 태풍이 지나간 후라 분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를 내치지 않으셨고 땀을 많이 흘린 우리를 위해
얼음물까지 직접 챙겨 주시는데 참 따뜻한 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 뵌 목적을 말씀드리니
양계장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질문에 자세한 답변도 해 주셨다.
하동청솔원은 대구에서 대형마트를 운영하던 정 대표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실패의
쓰라린 아픔을 겪고 고향으로 내려와 재충전과 재기를 꿈꾸고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옆 집 분이 병아리 30마리를 주면서 키워보라고
준 것이 지금의 청솔원을 일구게 된 계기였다고,
닭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키워본 경험도 없었지만 그 수를 불려 6천 수까지 키웠다고 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정 대표가 계란을 실은 트럭을 직접 몰고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이틀에 한 번
납품하며 자리를 서서히 잡아갈 무렵까지도 정 대표는 더위와 습기에 약한 닭을
가축으로 여기지 않고 조류로 인식해서 계사(닭장)를 만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닭들은 나무에서 자면서 살았는데 어느날 간밤의 폭우에 비 맞은 닭들이 몰사했다고 한다.
그 혹독했던 일화를 얘기하며 정 대표는 자신의 무지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웃으며 회상했다.
그리고 태풍 매미와 루사가 농장을 휩쓸고 지나 갔을 때 계사 주변의 나무들이
강풍에 쓰러지며 계사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해서 다시 곤경에 처했었다고 한다.
그 후 닭과 가축들에 대한 공부를 하며 양계장을 운영했는데 이후에도 작은 실패를 거듭하다
현재는 2만여 마리의 닭을 방사해 키우는 건강한 양계장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했다.
청솔원 계사
일반적으로 양계장들은 외부인에게 공개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처럼 생면부지의 이방인들에게는 공개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실제로는 운영을 홍보자료처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양계장을 둘러보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청솔원의 정 대표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앞장서서 안내해 주셨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거침이 없었다.
불과 2 년 전까지 친누님이 양계장을 운영했기에 많이 다녀 봤는데
육계가 아닌 양계를 이런 곳에서 키운다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공장형 케이지에서 길러지는 닭이 99%라고 하는데
이렇게 동물에게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준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청솔원은 2012년 7월 11일 농림수산검역본부로부터 동물복지농장 1호로 지정됐다.
이제 유럽에서는 닭을 케이지에서 키우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제정됐다고 한다.
참으로 옳은 방향인 듯 싶다. 건강한 철학을 지닌 운영자가 건강한 방법으로 농장을 운영하며
동물에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만 우리 인간들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바짝 가까이에 붙었는데 보통의 양계장과 달리 거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일반양계장은 차를 타고 지나갈 때 창문만 열어도 계분의 냄새에 찡그리게 되는데 여긴 달랐다.
방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