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
음악, 평화, 아프리카와 조국 자메이카를 사랑했던 밥 말리
(2012. 8. 3. 대학로 CGV)
밥 말리
(1945. 2. 5 ~ 1981. 5. 11)
본명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로 1945년 2월 카리브해 쿠바 아래쪽 작은 섬나라인 자메이카의
세인트 앤에서 50대의 영국인인 백인아버지와 10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났다.
12세에 킹스턴의 빈민가로 이주하여 용접공으로 일하며 17세에 첫 녹음을 하였는데
빈민가에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아 1963년 버니 리빙스턴, 피터 토시와
함께 그룹 웨일러스를 결성하여 리드기타리스트이자 리드보컬리스트로 활동한다.
1968년에는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라스타파리안교로 개종했는데
그의 음악에는 라스타파리안교 신앙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1972년에는 영국의 레코드사들과 계약을 맺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거듭난다.
대표곡으로는 에릭 크랩톤이 부른 "I Shot The Sheriff" "No Woman, No Cry" "Exodus"
"Zimbabwe" "Rebel Music" 등이 있으며 1984년 발매된 앨범 "Legend"는 1,200만장이나 팔렸다.
밥 말리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체 어린 시절을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정체가 모호한 혼혈아로 요즘 같으면 왕따를 당하며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의 피와 아프리카의 뿌리를 함께 지닌 밥 말리는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음악적
동지들을 만나면서 음악적으로 완숙해지고 라스타파리안교로 개종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는 짧은 인생을 참 열심히 살았다.
영화에 나오는 일화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밥 말리는 많은 부인에게서 11명의 자녀을 뒀는데
어린 아이들과 놀때도 너무 최선을 다한 나머지-가령 달리기를 할때 아이들에게 맞춘 속도가
아닌 자신의 전속력으로 달렸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빠와 놀기를 싫어 했다고 한다.
그가 사랑하는 조국 자메이카를 위해 암살의 위험 속에서도(실제 영국에서 암살 사건으로 총에 맞음)
내전위기에 처한 자메이카를 구하려 방문, 평화콘서트를 개최하는데 공연 도중에 즉흥적으로
좌우 지도자를 무대로 이끌어내 서로 손을 맞잡고 화합을 끌어낸 대목은 감동적이었다.
또 1980년에는 짐바브웨가 무자비한 인종차별과 백인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게 되자
그는 직접 짐바브웨라는 노래를 만들고 아프리카 짐바브웨 행사에 직접 참석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무자비한 독재자 무가베의 젊은 시절이 잠깐 나오기도 하는데 그 때는 국민적 영웅이었을까?
자메이카도 옛날 백인들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몸 속에는 아프리카가 살아 숨쉬며 피 속에는 아프리카가 흐른다.
밥 말리도 흑백혼혈인이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만은 누구 못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얼마후 밥 말리는 암 판정을 받는데 이미 온 몸 구석구석까지
암세포가 퍼져서 손을 쓸 수 없게 되고 36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레게리듬이라는 음악을 남겨두고 갔다.
그의 조국 자메이카와 평화의 갈구, 그의 뿌리인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밥 말리가 남긴 레게뮤직과 정신이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