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仙巖寺)
갈 때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선암사(仙巖寺)
(2012. 6. 24)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에 있는 절이다.
542년(진흥왕 3)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비로암(毘盧庵)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박전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 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만일 세개의 암사(巖寺)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따라 도선이 세 암자를 창건하였는데, 곧 선암(仙巖)·운암(雲巖)·용암(龍巖)이 그것이라고 했다.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되는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仙人)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선암이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088년(선종 5) 의천(義天)이 중창하였으며 그래서 선암사에는 의천의 영정이 있다.
정유재란 이전의 선암사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석종(石鍾)·철불(鐵佛)·보탑(寶塔)·부도(浮屠)·문수전(文殊殿)·조계문(曹溪門)·청치(圊廁)
등은 다행스럽게도 화를 면하였으나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병화에 소실되었다.
1660년(현종 1)에 경준(敬俊)·경잠(敬岑)·문정(文正) 등 세 대덕이 중건하였고,
그 뒤에 침굉(枕肱)이 많은 당우(堂宇)들을 보수하였고 규범을 엄하게 하였다.
1699년(숙종 25)을 전후한 시기에 원통각(圓通閣)·약선궁(若仙宮)·대법당·오십전 등을
새로이 건설하고, 관음상 1구, 소상(塑像) 61구, 화상(畵像) 등을 새로이 조성하였다.
또 6·25전쟁 이전에는 불각(佛閣) 9동, 당료(堂寮) 25동, 누문(樓門) 31동 등 모두 65동이나 되는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웅전·원통전·팔상전·불조전(佛祖殿)·장경각·강선루(降仙樓) 등 크고 작은 20여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불상으로는 고려시대의 석가모니불상과 1685년에 조성된 석가모니불상·과거칠불상(過去七佛像)·아미타불상·
53불상·석가삼존상·제자상·16나한상·사자상(使者像)·판관상(判官像)·철조약사불상(鐵造藥師佛像)·
지장삼존상(地藏三尊像) 등의 많은 불상이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1624년에 그려진 가로 7.5m, 세로 13.5m의 괘불(掛佛)과 화엄탱(華嚴幀) 등의 불화가 있다.
대웅전 앞에는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선암사삼층석탑 1기가 있고,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0호인 금동향로(金銅香爐) 1기가 있다.
그리고 ‘大福田(대복전)’이라는 편액과 천자(天字)와 인자(人字)를
결합시켜 천인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한 한 글자씩의 편액이 있다.
이들 편액에는 어필(御筆)이라고 씌어 있는데 순조의 친필이다.
정조가 태자의 출생을 석왕사와 선암사에서 기원한 결과 순조가 탄생하였으므로
정조는 석왕사에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고,
순조는 선암사가 큰 복의 밭이라 하여 대복전이라는 글을 금자(金字)로 썼다고 한다.
그 뒤 순조는 다시 천자와 인자의 한 자씩을 써주어 대복전 현판 양쪽에 걸어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 되게 하였다고 전한다.
절일원이 송광사와 더불어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축약-
일주일 전 선암사 관련 TV프로그램을 보고 빠른 시일 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외숙모님 별세로 장례식 참석차 이렇게 일찌기 일주일 만에 찾아올 줄을 몰랐다.
외숙모님 안장식까지 마치고 여수엑스포에 다녀와 순천에 숙소를 잡으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다.
원래 선암사에는 새벽에 가려 했는데 장례식장에서의 쪽잠과 장거리운전의 피로로 인해
진일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후인 9시경에야 선암사 주차장에 당도할 수 있었다.
140년 만의 가뭄이라는데 순천에는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포장도인 이 길을 걸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부부가 가랑비를 맞으며 조계산 등산을 하는데 보기 좋다.
내 경우에는 이슬비나 가랑비가 오는 새벽 산사가 가장 좋다.
단 사진을 담기에는 어려움과 제약이 많지만......
삼나무숲
부도
조선 후기의 특성을 간직한 사자탑(獅子塔)인 화산대사사리탑(華山大師舍利塔)
선암사의 8백년 된 야생차밭은 예로부터 유명한데 생산량이 적은 것이 아쉽다.
강선루(降仙樓)의 앞과 뒤의 모습
대부분의 사찰은 누문을 일주문 안쪽에 두는 데 반해
선암사는 누문을 일주문 밖에 두어 계곡과 어울리도록 한 것이 이채롭다.
승선교와 승선교의 홍예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는 사진가들의 단골 포인트이기도 하다.
선암사 삼인당(仙岩寺 三印塘)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하며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에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사천왕문이 없는데 그 이유는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팔작지붕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대웅전의 기단과 석계(石階)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계측(階側)의 조각은 볼만한 것이었으나 근세에 이르러 모두 고쳐 지었다.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선암사삼층석탑
삼층석탑은 동탑과 석탑이 있는데 양식과 건립연대가 모두 같다.
선암사 구시
재질은 괴목이고 크기는 330×80×50cm로 대웅전 한쪽에 놓여 있으며
큰 통나무를 파서 그 안에 밥을 보관하는 목조용기다.
일설에 의하면 송광사에 있는 비사리구시(싸리나무밥그릇)도 선암사에서 빌려갔다 돌려주지 않은 것이라 한다.
조사당(조사전)
불조전
팔상전
삼성각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보이는데 확인은 하지 못했다.
해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담한게 소담스럽고 연꽃이 막 피기 시작했다.
선암매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으며 원통전 담장 뒤에서 자라는 토종매실나무로 수령은 600여 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나무높이 8m, 밑둥기둘레 1.2m이며, 수관은 동서 13m, 남북 13로 생육상태가 좋고 넓게 퍼진 가지가 특히 아름다우며
꽃의 색이 유난히 붉고 향이 짙기로 이름나 있다.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약 50주 정도가 심어져 있으며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선암사중수비
운수암 가는길
원숭이 같기도 하고 동물의 형상을 한 바위다.
운수암 관음전
운수암에서 내려다 본 풍광
측간(뒤깐)
우리나라 최고의 화장실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측간(해우소)이다.
측간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지면에서 높게 만들었으며
통풍이 잘 되도록 살창을 두어 기능성에 충실하도록 지어졌다.
또한 입구에는 옷을 걸 수 있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