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
부드러운 몸동작 속의 강한 무예 택견
(2011. 7. 13)
택견의 몸동작을 보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춤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무술 운동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태권도와 검도를 약간 한 경험으로는
몸이 경직된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부드러움 속에서 힘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무예가 아닌 수영도 그랬고 스포츠의 근원인 육상 중의 마라톤도 그랬습니다.
제가 검도를 배울때와 시간이 많이 흘렀슴에도 선생님(검도에서는 8단을 칭함)께서는 항상 "힘 빼"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을때 본인 스스로는 모르게 스피드가 떨어진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아뭏든 그런 면에서 저는 택견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몹시 좋아하는 운동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요즘 유행하는 격투기시합에서 유연성과 순간적인 폭발력을 감안한다면 아마 으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9월 2일부터 열리는 충주세계무술축제를 위한 일환으로 택견시범단의 시범을 보는 좋은 계기가 있어서 소개를 할까 합니다.
---택견의 정의 및 특징---
택견은 품밟기라는 독특한 보법에 의하여 능청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우쭐거리기도 하며,
발로 차기도 하고 ,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가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예다.
특히 택견의 몸놀림은 질박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워 손발과 근육의 움직임이 일치하여 자연스럽게 방어할 수 있으며,
다른 무술에서 볼 수 없는 품밟기, 활개짓, 발질은 상대로 하여금 중심을 흐트러놓아 공격의 기세를 둔화시킬 수 있고,
동작의 기본을 굼실댐으로써 충격을 완화시켜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핳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택견은 위계표시로 타 무술에서 사용되는 "급"이나 "단" 대신에 "째"나 "동"을 사용한다.
---택견의 역사---
택견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고구려시대부터 전승되고 있는 한국 무술의 뿌리로서
초대 인간문화재 고 신한승(辛漢承) 선생에 의해 체계화되고 정립되어 83. 6. 1 무술로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 중요무형 문화재 제 76호로 지정 받아 국가로부터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조상들은 기마 민족의 후예로서 말달리며 활쏘기와 힘 겨루기를 좋아했던 용맹하고
강인한 민족이었던 것이다.당시 광활한 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 인들의 활기찬 기상의 원천이 된 것은
바로 택견과 같은 온후하고 낭만적인 민족무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택견에 대한 기록이 미흡하기는 하나 고려사(역사서) 라든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재물보(才物譜), 안곽(安廓)의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조선상고사(朝蘚上古史),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해동죽지(海東竹枝) 등에 택견에 대한 기록이 그나마 있어
택견이 우리민족을 지켜온 호국무예로서 장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蘚上古史)를 보면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제도의 창설로 始한바..
선배는 원래 신수두 교도의 보통명칭 이러니 태조 때에 와서 매년 3월, 10월 신수두 대제에 모든 궁중을 모아
혹 칼로 춤추며 혹 활도 쏘며 혹 앙감질도하며 혹 덕건이도 하며.... 송도의 수박이 곧 선배경기의 일부분이니
수박이 지나에 들어가 권법이 되며 일본에 건너가 유도가 되고 조선에는 이조에서 무풍을 천시한 이래로
그 자취가 거의 전멸하니라...』이와 같이 중국대륙을 벌벌 떨게 했던 고구려의 강인한 정신은 선배제도와 같은
국가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나라의 강성은 동서고금을 통해 보더라도 힘에 의해 좌우되어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무예란 국가부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천으로서 나라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 중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고구려!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던 그 저력! 그 용감성!
그것은 바로 택견과 같은 온후하고 낭만적인 민족 무예가 국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때부터 시작되었던 택견은 신라시대에는 화랑도로서 삼국을 통일하는 근간이 되었고,
고려 때에는 호국무예로서 무과시제의 정규과목이 될 정도로 국가차원에서 장려했던 무예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숭문천무사상(崇文賤武思想)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쇠퇴하기에 이르렀으며,
1910년 한일합방과 더불어 일제의 한국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못 이겨 택견꾼들은 일경의 눈을 피해
산에서 혹은 들에서 택견을 수련해왔던 것이다.
그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진흙 속에 뭍혀 버린 택견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76호로
지정 받게 된 것은 작고하신 인간문화재 고 신한승(辛漢承) 선생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해 사장되었던 택견은 다시 빛을 보게된 것이다.
여느 무술에서 느낄 수 없는 택견의 독특한 몸놀림은 능청거리기도하고 때로는 우쭐거리기도 하며, 혹은 발로차기도하고, 혹은 상대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기도 하는 택견의 기법은 서두르지 않는 여유 있는 자연적인 무예라 할 수 있다.
-택견전수관 홈페이지에서 인용
---혼자 익히기---
---마주메기기---
택견전시관
주소 : 충북 충주시 호암동 586번지
전 화 : 043)850-7304
홈페이지 : www.tg7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