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낙산사

배흘림 2011. 8. 13. 11:40

 

 

 

동해의 풍광과 어우러진 관동팔경 낙산사

(2011. 7. 23)

 

 

양천구 다문화가정 식구들과 함께 세번째 여행지인 낙산사에 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늦게 출발한 업보가 여기서 나타나 시간의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휴휴암에서 오후 6시 30분경에 출발하며 낙산사에 관람이 가능한지를 문의하니 가능하다고 합니다.

낙산사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됐는데 그나마 다행으로 해가 긴 계절이라 주마간산격으로나마 둘러봤습니다.

 

신라 문무왕 11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대사처음으로 관음성지 낙산사창건했으며,

그 후 의상대사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등 수많은 절을 창건했습니다.

 

낙산사는 강화 보문사와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관음성지 꼽히는 절입니다.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근본도량으로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음신앙이란 관세음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불교신앙으로 현세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험을 얻고자 하는 신앙형태라고 합니다.(낙산사 홈페이지 인용) 

 

또한 낙산사 의상대는 간성 청간정,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과 함께 관동팔경 중 하나인데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땅에 있습니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5일 주변 산불이 옮겨 붙어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고 지금은 복원을 한 상태입니다.

 

 

홍예문(虹霓門)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면 무지개 모양의 석문(石門)인 홍예문이 있는데

 위의 누각(樓閣)은 2005년 산불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홍예문은 1467년(세조 13)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누각은 1963년 10월에 지은 것입니다. 
 

 

 

1990년대에 낙산사 추암 촛대바위 일출의 명소 쌍벽을 이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깜깜한 새벽에 낙산사의 일출을 보러 갔었죠.

 

그런데 웬걸 낙산사 입구 어두운 구석에 불이 켜져 있더군요.

가보니 매표소인데 입장료를 받고 있더라구요.

 

"아저씨, 이 시간에도 입장료를 받아요?"

아저씨 대답 " 우린 지금이 대목이라우."

"......"

 

그 이후로도 변산 내소사와 철쭉제때 소백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습니다.ㅎㅎㅎ

 

 

사천왕문

 

 

빈일루(賓日樓) 

동해를 바라보며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을 가졌구요

전면 3칸, 측면 3칸에 전면은 팔작지붕, 뒷면은 맞배지붕 형태로 지었고

현판의 글씨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의 친필이랍니다.

 

 

원통보전과 원장(垣墻)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네모 낳게 방형(方形)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垣墻)이 있는데

사찰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이며, 현재 강원도유형문화재 제 34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장의 크기는 전체 길이 220m, 높이 3.7m이며,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처음 중건할 때 쌓았다고하며

법당을 둘러싼 성역(聖域) 공간임을 구분하고 있으며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습니다.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담장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으며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습니다.

 

담벽은 강회진흙과 평와(平瓦)를 차례로 다져 쌓아 담벽앞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둥근 화강암을 바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화진흙으로 메웠으며.

 담장 위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터만 남아 있었으나 근래에 전체적으로 보수하면서 연결했답니다.

(낙산사 홈페이지 인용)

 

얼마전에 답사다녀온 대구 달성 도동서원의 고졸한 맛을 지닌 담장이 생각나더군요.

도동서원담장당, 사당과 함께 보물 제 350호 지정됐다고합니다.

 

 

원통보전(圓通寶殿)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원통보전 원통전(圓通殿), 혹은 관음전(觀音殿)으로도 불리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합니다.

 

 

칠층석탑 

이 칠층석탑은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 (재위,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相輪)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탑의 전체 높이는 6m 20㎝입니다.

 

 

 

원통보전 내에는 건칠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는데, 2003년에 보물 제 136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5년 4월 화마로 원통보전은 완전 소실되었으나 건칠관세음보살상은 안전하게 대피했다가 현재 봉안되어 있습니다.

 

 

원통보전 앞의 스님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 가는길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해수관음상 1972년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雙龍像), 양 옆에는 사천왕상(四川王像)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甘露水甁)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手印)을 짓고 있다.

해수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이다.

해수관음상 앞에는 기도처인 관음전이 있다. (낙산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관음전에서 바라본 해수관음상

 

 

 

 

보타전(菩陀殿)

 

 보타전은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임을 상징하는 전각으로서,

 1991년 7월 짓기 시작해서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했다.

 규모는 앞면5칸, 옆면3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보타전 안에는 그밖에 동종금고(金鼓)가 있다.

 전각 외부 벽화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7관음상을 봉안하던 날에는 이적(異蹟)이 일어나 불자들을 감동시켰다.

 그날 밤,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청학(靑鶴) 다섯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늘 거친 파도소리를 토해내던 동해 바다가 문득 조용해졌으며,

무지개와 같은 서기광명(瑞氣光明)이 온 하늘에 가득 찼다.

 

또한 그날 밤 신도회장은 동해 바닷물이 해일을 일으켜 보타전까지 날아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보타전은 배산임수의 지형 덕으로 지난 2005년 대형 산불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 보타전 앞에는 누각 형태의 보타락이 있으며, 그 앞에는 큰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낙산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낙산배 시조목 기념비

 

 

 

 

안쪽에서 바라본 홍예문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하기 전에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장소로 낙산사의 모태가 된 홍련암

 관동팔경의 하나인 의상대 늦은 시간이라 답사하지 못하고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습니다.

 

 

2005년 산불시에 불에 탄 흔적으로 고목인데 밑둥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 소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전화 (종무소) : 033)672-24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