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곡지
날이 더워 카메라도 샤워한 날
(2008. 8. 1)
여름에는 흙탕물 속에서 꽃이 핍니다.
바로 연꽃이지요.
불교를 상징하는 꽃
우리 주위에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 많습니다.
백련으로 유명한 무안 회산백련지, 김제 청운사 화소백련지, 전주 덕진공원, 경산 영남대 옆 저수지,
남양주 봉선사, 시흥 관곡지, 강화 선원사, 부여 궁남지, 경주 안압지 등이 유명합니다.
휴가를 맞아 "꽃보다 님"과 함께 집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관곡지에 갔습니다.
아침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하루를 이렇게 망칠 수야 없지 않은가?" 라는 사명감으로 다가 섰습니다.
정오가 다 될 무렵 도착했으니 연꽃 촬영 시기는 이미 놓쳤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습기먹은 대지가 강렬한 햇빛과 함께하는 무더위였습니다.
관곡지에는 연세 많은 분들이 이미 도착해서
열정을 내 뿜으면서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계십니다.
너른 관곡지의 옆 귀퉁이만 조금 다녔을 뿐인데 폭염으로 조금 지쳐갈때 쯤 사고가 터졌습니다.
꽃님이 찍던 100mm 매크로렌즈를 장착한 바디가 그만 순간적인 강풍에 삼각대와 함께 풍덩한 겁니다.
전에도 삼각대가 안정감이 없어서 몇 번 주의를 주려했으나
잔소리를 하는것 같아서 참았었습니다만 결국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남들에게서만 일어나리라고 여겼던 상황이 내 앞에 전개된 것입니다.
바로 전원 끄고 배터리 분리하고 외부 물기 딱고 철수!
이 100매크로 렌즈는 사연이 많습니다.
사서 한 번의 마운트도 못한채로 도난 당해서 애를 끓게 하더니 되찾고 나서는
항상 꽃님 바디에 쥐어주다 보니 저도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장비라 속이 많이 쓰렸습니다.
그래도 때는 바야흐로 밥때가 훌쩍 지난 시간
뭐 먹을거야? 하니 염치없는 꽃님
"아무거나"합니다.
속으론 미워 죽겠지만 할 수 없죠...
이 벌한테 한 방 먹이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갑갑한 속 시원한 칡냉면 한그릇으로 달래고
삼성카메라 A/S 영등포지점에 들러 카메라와 렌즈를 맡긴후 귀가했습니다.
이 사진이 문제의 비싼 사진입니다.
그래도 색은 은은하게 잘 나왔습니다.
하마터면 100mm 매크로의 마지막 작품이 될 뻔한 사진입니다.
집에와서 무거운 마음에 덥기까지하니 말하기도 귀찮습니다.
꽃님은 지은죄가 있는지라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봅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신경질 부리고 화를 냈을텐데 너무 조용하니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답답함을 풀어주는데는 역시 가족인가 봅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처제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제 답글 " 날이 더워서 카메라가 지 발로 물 속으로 샤워하러 들어갔어."
했더니 놀라는 처제와 손아래 동서 이서방의 위로 답글들...
그리고 이서방이 저녁에 위로주 한 잔 하자고 합니다.
처음 카메라 샀을 때부터 이것 저것 챙겨주더니 카메라 도둑 맞으니 위로주 한잔,
찾을때는 끼쁨주 한 잔 함께 하자고 권하니 참으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첫사진부터 여덟번째까지는 제 나름대로 연의 생로병사를 순서있게 배치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