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유명예술가들의 전시회에는 가끔 찾아가는데
예전에 인상주의전, 모네전 등을 봤다.
대가글의 그림들을 보려면 유럽까지 가야 볼 수 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또 워낙 무지하다보니
도슨트시간을 통해 관람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무식한 사람의 소회-
고흐는 그 유명한 자화상을 비롯해서 40여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 중 35(?) 점의 자화상을 프랑스 파리 시절에 그렸는데
그것은 파리의 모델료가 비싸서 자신을 모델 삼은 것이라고 한다.
자화상
나는 위대한 예술가인 그를 몰랐다.
다만 그가 1970년대초에 돈 맥클린에 의해 히트했던 노래
"빈센트"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starry starry night 하면서 시작되는 그 때 당시로서는
대단히 긴 7분 이상 연주했던 곡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고등학교 시절 미술 이론 수업을 통해 자화상과
스스로 귀를 자르는 기행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는
단편적으로 "미치광이 예술가" 정도의 얄팍한 몇 줄만 알고 있었다.
드프레르 거리
고흐는 공교롭게도 형의 기일에 태어났는데
엄마의 비정상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이름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쓰게 했고
고흐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보다는 형의 기일을 추모했고
항상 어두운 색상의 옷만 입혔다니 그늘진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흐의 백부 세명이 화상이었고 그 영향으로 고흐도 파리와 런던에서
화랑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성직자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하던중
교리문제로 마찰을 일으켜 포기했다
이에 동생 테오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화가의 길을 권해서
그림을 시작했고 평생을 동생 테오의 경제적 도움으로 살았다.
그는 10년간의 화가 생활 중 "붉은 포도밭"이라는
딱 한 작품을 팔았는데 그림값은 400프랑이었다.
"언젠가 내 그림은 물감의 값어치 보다는 더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라고 그가 생전에 한 얘기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을 숙연케 한다.
슬픔
고흐의 연인이자 모델인 매춘부 시엔
그녀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20개월 가량을 함께 했다.
감자먹는 사람들
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온가족이 모여 희미한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는 거친 손에 대한 묘사에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광부 등 어려운 계층 사람들을 많이 그렸는데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가진 요즘의 민중화가였던 셈으로
그가 후세에 인정받는 여러 요인 중에 한가지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 즉, 아름답고 숭고한 것들을 담아내려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서
교회에서 설교듣는 사람들인데 설교가 재미 없는 듯
아이리스-붓꽃
실제로 보니 자리를 뜨기 싫을 정도의 작품
씨뿌리는 사람
밀레에게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밀레는 종교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고흐에게서는 인물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는 자연주의적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압생트가 담긴 물병과 잔
압생트는 매우 독한 술이라서 물과 희석해서 먹는데
당시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압생트를 마시며 예술을 논했다고 한다.
꽃이 활짝핀 아몬드 나무
(이번 전시회에는 오지 않은 작품)
생레미 병원의 정원
고흐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정원
꽃이 핀 복숭아나무
외눈박이신사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작품
우체부 조셉 롤랭의 초상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우체부로 설마 수염이 저랬을까?
게
마을 뒤편의 거리
프로방스 시골길 야경
피아체
성모마라아와 예수의 모습에서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요?
노란집
고흐는 고갱과 함께 생활하려고 전망이 좋은 방을 배려하는 등 노력했다.
그러나 서로 충돌했고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을 저질렀는데
이것을 목격한 고갱은 떠났고 고흐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의사 가세의 초상
엄청난 가격에 팔린 작품으로 이번에 오지 않았다.
고흐의 자살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친분이 두텁던 의사 가세가
딸과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고흐의 사망 후 지인들이 모든 작품과 소지품 등을 태워버리자고 말했지만
테오의 부인 즉 제수가 고흐 사후 다음 해에 형제간의 오고갔던 편지를 묶어
책으로 출판하면서 전시회를 열어 고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