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선운사 스케치
3월초 아직은 조금 이른 동백을 만나러 선운사에 갔습니다.
선운사,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이름이 예쁩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하여 이름에서부터 불교와 깊은 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운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암자 89개, 승려수만 자그마치 3천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구황봉에서 비학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선운사 전경
망원 200mm로 최대한 당겨보았습니다.
선유도 야경을 찍고는 카메라 메뉴도 재설정 안하고 화이트밸런스도 맞추지 않고 찍어 댔으니
사실 맘에 드는 사진이 한 개도 없구나.
다음주에 다시 가니 만회하리라...
같은 지점에서 선운사의 반대 방향에 우뚝 솟은 바위입니다.
비학산에서 바라본 정경
길이 낮고 부드러운 산과 편평한 대지를 가로질러 갑니다.
평야에 우뚝솟은 모습이 흡사 섬처럼 느껴집니다.
저수지
거북의 형상인데 배맨바위라고 부른 답니다.
배맨바위는 배를 매기 좋은 바위라고 하는데 산꼭대기에다 배를 맨다는 것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옛날 배들은 사공이 많았나 봅니다. 하기야 노를 저어 갔으니 사공이 많았겠죠.
요즘은 10만톤급 배도 선원이 10여명 밖에 안된다니 절대 산으로 오를수는 없겠죠.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수세기에 걸쳐 산하가 많이 바뀌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도 그시절에는 수심이 매우 깊었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어린 단종을 철저히 고립시킬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 하동의 유명한 화개장터도 몇백년 전에는 섬진강 물길따라 중국 범선이 왕래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룻배만 겨우 다닐수 있는 깊이니 배맨바위도 옛날에 배를 묶었다는 게 전설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낙조대
배맨바위와 낙조대를 잇는 철계단입니다.
워낙 생활환경이 저층 중심이다보니 여기 내려오는데도 아찔합니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서해인데 운무로 바다는 커녕 갯벌도 보이질 않습니다.
영남지방에 주왕산과 청량산이 있다면
호남에서는 선운산, 월출산, 마이산이 있네요.
낙조대 아랫녁에서 바라본 도솔암 종무소 등입니다.
도솔암과 바위의 조화가 절묘합니다.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 1200호)
명치 부위에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어 두었다는 감실이 있는데 조선 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었을때 갑자기 비바람과 벼락이 몰아쳐서 겁이나 그대로 닫았다고 합니다.
그 후 동학농민혁명때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도솔암에서 바라본 철계단입니다.
일반적인 절은 가장 깊숙한 곳에 삼신각이 있는데 선운사는 도솔천 내원궁이 있습니다.
선운사 대웅전(보물 제290호)입니다.
맞배지붕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장중한 분위기입니다..
선운사 동백숲(천연기념물 184호)
지난달 중순 안면도에서 동백을 우연히 봤을때 꽃몽우리가 �혀 있기에 성급한 감이 있지만 기대를 하고 갔는데 역시 조급했네요
전에는 철조망에 갇힌 동백이 처절해서 절집 주인에게 욕을 했는데 오늘은 철조망을 싹 걷고 시원하게 맞아주니 고맙습니다.
여수 오동도나 동백정의 동백은 꽃이 굵은데 반해서 이 곳 꽃은 작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네요.
불과 몇 십년년전 만해도 동백의 자생 북방한계선은 서천 동백정이었는데 어느덧 꽃씨가 날려 태안반도에서도
동백을 볼 수 있다니 다시금 지구온난화의 걱정이 생깁니다.
선운사의 동백꽃을 못 봤으니 시라도 한수...
개인적으로는 싫어하지만 동백꽃에 관한한 미당 서정주만한 시인이 없으니...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딱 시어와 맞는 동백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수한 육자배기는 없지만 동동주만 서너사발 넘겼습니다.
육자배기를 못 들었으니 동백아가씨라도 들어야겠습니다.
이미자씨의 미성이 아닌
한이 뚝뚝 떨어지는 장사익의 소리로 말입니다.
CD를 찾아 걸어야겠습니다.